스마트빌딩·스마트TV·스마트냉장고 등 스마트란 이름의 제품과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1990년대 중반 ‘디지털’ 열풍과 비슷한 열기가 느껴진다. ‘스마트’란 단어는 외모가 말쑥하고 영리한 것을 지칭했으나 정보화 시대에 들어와 정보처리 능력을 갖고 있는, 즉 지능화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새 의미를 갖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신드롬 앞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가 추구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부터 촉발된 일대 지각변동은 ‘스마트’ 시대를 열고 있다. 만약 컴퓨터에서 하는 인터넷, 게임, 음악 등을 단순히 손안의 하드웨어만으로 바꿨다면 스마트폰이 이렇게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는 고객이 필요한 것을 쉽게 다운로드해 쓸 수 있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콘텐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IT나 인터넷이 결합된 형태를 모두 스마트화로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것 같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인터넷이 가능한 가전제품은 이미 10여년 전에 나왔다. 당시엔 혁신 기술이었고 부품 가격도 높았다. 지금의 사회적 IT인프라는 당시와 다르다. 이제 한 차원 더 높은 고민이 필요하다. 생각의 폭을 넓혀 각각의 제품이나 서비스 본연의 고유한 기능을 똑똑하게 만들어야 지능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는 고객들의 번거로움은 물론 실수까지 방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스마트’라는 용어가 별다른 고민 없이 쓰이는 점도 신드롬의 거품을 부풀리는 원인이다. 고객에게 주는 가치가 어떤 면에서 스마트한 특징을 갖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조금 더 절전 성능을 높였다거나 작동 속도를 높인 것을 스마트해진 것으로 표현한다면 ‘스마트’라는 말은 차별화된 가치를 갖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스마트한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냉장고 안 식재료의 유통 기한을 관리해주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준다면 주부들이 냉장고 속 미로를 헤매는 수고를 덜어 주고, 식재료 낭비도 줄 것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료로 만들 수 요리 법을 제시하며 장바구니 리스트까지 스마트폰에 띄워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마트 그리드 역시 좋은 사례로 보인다. 전력선 통신으로 전기료에 관한 정보를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유해 말 그대로 스마트하게 전기소비를 조절한다는 아이디어다. 표준 제정 등 몇 고개를 넘으면 활용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와 있으며 가전제품에도 기능이 반영돼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생활 속에 일부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무늬만 스마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 본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포함돼야 한다. 무분별한 용어 사용은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며, 기업들의 고객 가치창조 의욕을 감소시켜 결국 고객이 누릴 가치가 적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진정한 ‘스마트’에 관한 올바른 방향 모색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 기기가 한 때의 유행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 스마트란 무엇이며,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이영하 LG전자 사장(HA사업본부장) yh.lee@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