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심상치 않다. 유류와 가스 공공 관련 요금이 연이어 오르면서 전기요금도 하반기를 기점으로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의지를 표명하면서 그에 따른 논란도 만만치 않다. 당장 시민단체와 경제학자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민생경제와 산업발전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전력 업계는 매번 거듭되는 가격 억제 정책으로 원가 이하까지 떨어진 전기요금에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기요금 개편을 놓고 ‘인상’과 ‘현실화’의 두 가지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전기요금의 현황과 사용실태, 향후 전기요금이 나아가야 할 방안 등을 5회에 걸쳐 알아본다.
GDP 대비 전력소비량 OECD 국가 평균의 1.7배, 1인당 전력소비량 국민 소득 2배인 일본 추월. 대한민국의 전력 사용 현주소다. 전기요금 인상을 앞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가계 부담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사용은 물 쓰듯 한다.
지금의 전력 과소비는 그동안 유지해 온 전기요금 저가정책에 기인한다. 물가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전기요금 저가정책은 가스·유류 등 다른 에너지원과는 다르다. 전기요금이 저렴하다보니 사람들은 가스레인지 대신 전자레인지를, 가스 및 유류 난방기 대신 전기난방기를 선호한다.
실제로 등유 소비량은 2002년 가격 자유화 이후 50%가량 감소한 반면에 전력 사용은 56%까지 증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대체 소비로 인한 국가적 에너지 손실은 9000억원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전기난방기기 보급 급증으로 동계 최대전력이 하계 최대전력을 초과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도 한국의 전력 과소비는 확연하다. 2009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8833㎾h로 일본(7818㎾h)·영국(5607㎾h)·프랑스(7512㎾h) 보다도 높다. 단순히 소비량만 따졌을 때는 미국(1만2917㎾h)보다 수치가 낮지만 GDP 대비 소비량은 0.5614㎾h로 미국(0.3427㎾h)보다 높다.
하지만 늘어나는 전력소비량에 비해 가격은 낮다. 종합단가는 주요 선진국의 30~50% 수준에 불구하고 지난 8년간 소비자물가 상승 대비 실질 전기요금은 11.7%가 하락했다. 전기요금현실화의 대명분인 원가 보상률은 지난해 90.2%에서 86.1%로 더 떨어졌다.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원가구조에서 국내 전력산업은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점차 병들어가는 셈이다. 전력업계가 전기요금 인상에 ‘현실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업계는 전반적으로 대수술 없이는 지금의 전력 과소비 행태와 적자시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력거래소가 발표한 제5차 전력수급계획은 국민들의 전기절약 노력을 수치에 반영했지만 향후 전력 사용량이 계속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성배 전력거래소 전력계획팀장은 “에너지 절약 노력을 충분히 감안해도 전열기기 등 에너지 대체 제품 사용이 계속되는 한 전기소비 감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기요금은 지금의 통신요금처럼 여러 가지 상품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 사용하는 형태로 변화할 예정이다. 과거 세금으로 인식돼 온 전기요금이 상품의 성격을 갖게 되는 셈이다. 원가가 보장되는 전기요금과 이를 현명하게 쓸 줄 아는 국민의식이 갖춰진다면 여러 전기요금 상품들이 경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소비자혜택을 제공하는 개방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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