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공공재와 서민용품·식료품 가격인상 제한이다. 라면과 밀가루, 대중교통요금 그리고 전기요금 등은 대표적인 가격조정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을 위해 동결해야 하는 1순위로 지목돼 왔다. 1984년 이후 버스 7.5배, 지하철 4.5배, 택시 4.8배의 요금인상이 있었던 반면, 전기요금은 1.5배 오르는데 그쳤다. 각 에너지원별 가격 추이에서도 전기요금은 인상폭이 낮았다. 2002년 대비 경유는 122%, 등유는 94%, 도시가스는 47%가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15% 인상한데 그쳤다.
올해도 정부는 물가안정 차원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늦추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3.2%에서 4.1%로 크게 올리면서 정부의 공공요금 가격개입에 대한 요구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동결이 반드시 물가안정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상반기 물가안정을 정책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하반기로 늦췄지만 물가는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업계는 전기요금 동결이 물가안정보다는 오히려 다른 부문으로 그 피해가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례로 전기공사 업계는 비현실적인 전기요금이 한국전력의 적자규모를 키우고 결과적으로 전체 공사규모가 줄어들면서 먹을거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한전은 재무능력 저하에 따라 최근 인도네시아·이집트 등 해외사업 입찰 심사에서 2년 연속 적자라는 발목에 잡혀 탈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지난해에는 이자비용이 하루에 50억원씩 발생하면서 차입금 증가가 다음세대 부담으로 넘어가는 부작용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기요금현실화가 늦어지면서 ‘재무능력 저하→공사량 축소→시장위축→재무능력 저하 확대’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이론적 잣대가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간 유지되고 있는 타 민간기업 대비 높은 간부 비중과 지난해 적자 상황에서 지급한 보너스는 국민으로 하여금 “굳이 전기요금을 올릴 필요성이 있는가?” “왜 한전의 적자를 국민이 메워야 하는가?” 등의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서는 업계가 솔선수범해서 긴축과 내실을 다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한 달 평균 지출하는 전기요금은 4만6485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의 1.9%에 불과하다. 통신비(14만2480원)에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전기요금이 1% 상승할 경우 소비자 물가는 0.019%, 생산자물가는 0.0274%의 변동요인이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인상의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영향이 미비하고 실질물가상승 요인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는 의견이다.
구자윤 전기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전기요금은 시장요인 보다 정치적 논리로 결정돼 왔다”며 “물가인상률이 반영되지 않는 지금의 전기요금은 향후 시장에서의 가격과 요금제도 선진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kr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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