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逆發想)’은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되는 아이디어를 말한다. 상식적인 생각을 깨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역발상 사고를 ‘혁신’으로 표현한다.
최근 신용보증기금(신보)이 역발상 아이디어 서비스인 ‘온라인 대출장터’로 호평을 받았다. 서비스 내용을 보면 ‘왜 그동안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할 정도로 단순하다. 기존에는 신보 보증서를 들고 은행을 찾아가야 했다. 돈(대출)을 받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을(乙)이 된다. 금리 결정 과정에서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 이 은행 저 은행 다녀봤자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한다.
온라인 대출장터는 다르다. 보증서를 끊은 고객(기업)이 신보 온라인대출장터에서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들이 그 기업에게 적절한 금리 조건을 제시한다. 기업은 원하는 금리를 제시하는 은행을 고르면 된다. 수십년 을(乙) 관계로 끌려다녔던 중소기업들이 갑(甲)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신보측은 “이제 중소기업이 은행 상품을 이용하면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바뀐 건, 이것만이 아니다. 시행 몇 개월 만에 서비스 이용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금리가 평균 0.5%포인트 내렸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들이 가능한 최소한 금리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강요를 한 것도 아닌데 은행이 알아서 금리를 낮춰 제시했다. 역발상 아이디어 하나로 중소기업은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골치 아픈 실랑이(금리결정)를 할 필요가 없게 됐고, 동시에 금리 부담을 낮췄다. 신보는 자체 보증규모(35조원)를 기준으로 0.5%포인트 금리 인하시 기업들은 20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만큼 비즈니스에 있어 갑을관계가 복잡하고 심각한 나라가 있을까. 대기업과 협력 하청기업 관계가 대표적이다. 최근 모 벤처캐피털업체 대표는 ‘대기업이 오더(주문량)도 밝히지 않은 채 설비를 늘리라고 지시한다’ ‘특정업체 지분을 대기업에서 인수 후 물량을 밀어줘 다른 경쟁사는 고사한다’ 등 벤처기업이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겪은 애환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서 “벤처가 살아남기에 정말 힘든 곳이 우리나라”라고 한숨을 지었다.
매 정권마다 대·중소기업 상생(동반성장)이 이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해법이 보이지를 않는다. 신보 사례를 보면서 우리가 너무 정공법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