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화폐=화폐는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꼽힌다. 그렇다면 화폐가 생활의 전반에 스며든 중세에도 자본주의는 있었을까?
프랑스의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는 ‘중세와 화폐’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 책은 화폐 사용이 보편화됐던 중세에 자본주의가 자리잡지 못했던 이유를 중세의 경제와 일생생활 속에서 탐구해간다.
저자는 오랜 탐구를 통해 중세에 자본주의가 정립되지 못한 조건들로 수차례의 화폐기근, 단일시장의 부존재, 중세의 가치 개념으로 꼽았다. 화폐기근은 중앙집권적 권력이 보편화되지 못한 데서 기인하며, 중세에는 시장이 다양한 지역에서 열렸기 때문에 단일 시장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중 저자가 자본주의 정착에 가장 큰 장애로 본 것은 중세의 가치 개념인 ‘카리타스’였다. 카리타스는 중세의 인간과 신,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랑, 자비를 뜻한다. 경제 역시 종교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화폐는 경제의 실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중세 유럽의 경제는 증여 경제로 자선을 위해 화폐의 이용이 확산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의 요소는 16세기 이후에 나타난다고 결론지으며 중세의 창의성은 다른 곳에 있다고 강조한다.
자크 르 고프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1만 5000원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