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개 정유회사가 4348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지난 2009년 말 공정위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담합에 부과한 6689억원의 과징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시장점유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키 위해 소위 원적지 관리원칙에 따라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했다며 과징금 4348억원을 부과했다. 담합에 적극 가담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업체별 과징금 액수는 SK이노베이션 1379억7500만원, GS칼텍스 1772억46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700만원, 에쓰오일 452억4900만원이다.
◇공정위, 담합 사실 확인=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3월 정유 4사 소매영업 팀장들이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 대책반’모임에서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원적관리 원칙’에 따라 원적사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타사 원적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원적관리 원칙은 정유사들이 자사 상표 주유소나 과거 계열 주유소였던 무폴 주유소에 대한 기득권을 서로 인정, 경쟁사의 동의 없이 타사 주유소를 임의적으로 유치하지 않는 영업 관행을 뜻한다.
이에 따라 이들 정유 4사는 타 상표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 변경을 요청하더라도 기존 상표 포기각서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한 것을 최소 20여건 이상 확인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는 3사간 협의를 통해 서로 주유소를 주고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강력 반발=공정위의 이번 조치에 대해 정유업계는 즉각 반발 성명을 내며 공동으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특정 정유사 임원이나 경영진도 아닌 전 영업직원 개인의 진술에 의존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담합사실이 없는 만큼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릴 것”이라고 밝혔다.
에쓰오일 측도 “공정위로부터 의결서를 받은 후 면밀히 검토해 다각도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으로 전망은=정유 4사는 공정위로부터 서면으로 의결서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담합 인정 여부에 관계없이 60일 이내에 일단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 공정위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행정 소송에서 이기면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적게 잡아도 2~3년은 결려 현대오일뱅크처럼 상대적으로 영업이익이 적은 업체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말 LPG 담합에 따른 과징금에 대한 행정소송도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더 큰 문제는 과징금 공포로 정유업계의 상도덕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지난 LPG 담합 과징금 때는 SK에너지(현 SK이노베이션)와 SK가스가 스스로 담합을 인정하면서 과징금을 면제 받는 리니언시(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를 한데 이어 이번에는 GS칼텍스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담합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자진신고만 하면 1000억원을 넘나드는 과징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큰 유혹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정유 업계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이번 과징금은 석유제품 가격으로 인해 7000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게 된 정유 업계에 과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