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근무지가 있는 충남 천안시 입장면 근처에는 보리밥을 양은도시락 통에 내오는 식당이 있다. 그때마다 학창시절의 점심시간, 혹은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향수에 젖고는 한다. 그런데 한편 돌이켜보면 양은도시락 통이 튼튼하긴 했어도 그리 편리했던 것 같지는 않다. 보온성이라고는 없고, 툭하면 뚜껑이 벗겨지는데다, 칸막이가 있어도 밥과 반찬이 뒤섞이기 십상이었다. 양은도시락 통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김칫국물에 책과 가방을 적시고 울상 지어본 경험 한 두 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도시락 통들은 충격에 강한데다 첨단 진공공법과 고성능 게터(Getter)로 보온·보냉 효과를 높였기 때문이다. 고무패킹을 대 내용물이 흐를 염려가 없고, 국을 담을 수 있는 용기도 따로 구성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요즘은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에 데워먹을 수 있는 즉석밥 상품이 출시돼 여행 시에도 쌀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마트의 진열대에는 김치에서부터 각종 반찬·장·죽·국을 담은 포장상품들이 즐비하다. 전투식량 조달을 위해 발명대회까지 열었던 나폴레옹이 들었더라면 크게 반색했을 소식이다.
패키징(Packaging) 기술은 이제 단순히 상품을 보관·진열하는 보조수단에 그치지 않고, 신시장 창출의 동력원이 되고 있다. ‘조리된 밥’만 하더라도 용기 개발이 뒷받침되지 못 했더라면 실용화 자체가 불가능했을 아이디어였다. 6개월 간 실온보관해도 품질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비결이 바로 먼지와 미생물을 통제할 수 있는 용기 제조기술 때문이다. 더욱이 패키징 산업은 상품을 전제로 하는 특성 때문에 제조업 전반에 연관성이 높으며, 특히 식품·전기·전자·화장품·제약산업과 관련이 깊다. ‘제조업의 종점, 물류의 시발점’으로서 물류 효율화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이제는 여기에 저탄소 녹색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과제까지 더해졌다. 국내에서도 한 기업이 3중막 다층구조 기법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 PET병을 개발했지만,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원 절감과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패키징 기술 개발을 서둘러 왔다. 20여년 전에 캔 용기 외부를 폴리에스테르 필름으로 코팅, 생산공정 중 냉각수와 세척수가 필요 없는 TULC캔을 개발한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 예다.
64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패키징 시장은 신흥 소비시장의 확대에 따라 연간 6%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만도 27조원(2009년)에 달해 소프트웨어·바이오·로봇산업보다 크다. 반면에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은 아직 미흡해 선진국의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생산기업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탓에 신기술 개발 여력이 적고, 패키징 학과가 개설된 대학도 두 곳에 불과해 전문인력 공급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2007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내에 패키징기술센터를 설립하고 관련 중소기업 지원을 맡긴 배경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패키징 산업의 규모나 중요성에 비해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에 지식경제부는 지난 3월 패키징 산업을 ‘플러스 알파(+α)’ 산업으로 선정하고, 체계적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패키징산업 발전 전략’에 담아 발표했다. 기술역량 제고, 인력 공급,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2015년까지 43조원 규모로 시장을 넓히고, 수출 규모도 두 배 가량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6월 14일에는 킨텍스에서 ‘2011 미래패키징 신기술 정부포상’도 열린다. 패키징 산업인들의 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마련돼 5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서는 지경부 장관상 포상 규모가 두 배로 확대된다. 모쪼록 정부의 ‘플러스 알파’ 전략이 국내 패키징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경환(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khna@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