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31일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Knock In-Knock out) 관련 항소심에서 피고인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 고등법원은 이날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낸 1심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원고가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소송, 손해배상청구 등을 모두 기각했다. 은행의 계약 권유가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심사숙고해 내린 고등법원의 판단을 우리는 존중한다. 은행과 중소기업간 키코 계약서만 보면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큰 무리가 없을 수 있다. 위험한 상품에 가입 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책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매우 아쉽다. 계약내용만 집중한 나머지 은행과 중소기업 간의 사실상 수직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게 은행은 사실상 ‘갑’이다. 대출의 칼자루를 쥔 은행이 권유한 키코 상품 가입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거스르기 힘든 게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피해 중소기업들을 또 한 번 외면한 판결”이라며 항소의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든 중소기업들은 법적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만일 소송을 대법원까지 이어간다면 중소기업들은 더 확실한 대응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 은행의 행태는 물론 외환 당국의 환율 정책이 키코 사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본업을 젖혀놓고 환투기만 골몰했다는 오해를 씻고, 명예를 회복할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