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관(IRCA)이 1일 휴대폰 사용이 뇌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WHO 발표 자료는 수십편의 논문을 분석해 도출한 것에 불과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휴대폰 사용과 뇌종양 발생의 상관관계가 WHO로 인해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1일 WHO는 휴대폰 사용이 특정 타입의 뇌종양 발생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며 소비자들이 휴대폰 노출을 줄이는 방법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WHO 산하 IRCA의 14개 회원국 31명의 과학자들이 프랑스 리옹에서 전문가 회의를 열고 낸 결론이다. 그들은 모든 가능한 과학적 증거를 검토한 결과, 휴대폰 사용은 ‘발암 가능(possibly carcinogenic)’인 2B 등급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밝혔다. 휴대폰 사용이 살충제 DDT, 커피 등과 동일한 수준의 발암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이 결과가 오랜 시간 동안 임상 실험을 통해 심층적으로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휴대폰과 암 발생 관계를 다룬 수십편의 논문을 분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논문 안에 들어있는 질문 항목들도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이미 뇌종양에 걸린 사람들에게 10년 전보다 얼마나 자주 휴대폰을 사용했냐고 질문해 도출한 결과도 버젓이 나와 있다. 사람들의 휴대폰 사용 형태가 수년 동안 급변해 오고 있음에도, 예전에 조사했던 연구 결과를 리뷰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는 IARC가 지난해 ‘직접’ 연구해 내놓은 결과를 뒤집은 꼴이 됐다. IARC는 국제역학저널에 ‘휴대폰과 암 발병은 뚜렷한 상관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10년간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13개국 휴대폰 사용자 1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뇌종양에 걸릴 가능성이 있지만, 시간에 따라 발병 위험이 더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텍사스 주립대 앤더슨 암센터의 도날드 베리 교수는 “휴대폰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암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발암 가능이라는 등급은 말 그대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암 발생을 자동적으로 야기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영국 암연구소의 에드 용 소장은 “WHO의 발표는 휴대폰과 암의 연관성에 대해 몇몇 근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직접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연결고리가 약하다”고 반박했다.
전 세계 유수 연구소들은 휴대폰과 암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국립 건강연구소는 ‘휴대폰 사용이 뇌 세포 활동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미국 통신제조사 연합인 CTIA는 ‘휴대폰과 암 상관관계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이에 IRCA는 “휴대폰 사용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된 것은 아니다”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한편 미국 휴대폰 제조사들은 휴대폰을 몸에서 떼어서 사용하라고 소비자에게 권고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4는 안전 매뉴얼에 통화를 하거나 데이터를 송신할 때 몸에서 15㎜ 정도 떨어져서 사용하라고 명시했으며 블랙베리는 25㎜를 권고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