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팹리스 기업이 500개입니다. 매년 200개 기업이 사라지지만 또 그 만큼 다른 벤처 기업들이 생겨납니다.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그의 말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이 아닌 중국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었지만 겉 말 속에는 조국의 산업 발전을 바라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지난 2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홍콩 기업설명회서 만난 이용욱 부사장은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본사 임원이 된 인물이다. ST마이크로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그토록 취약하다고 지적받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이 부사장은 ST마이크로 내 아시아 출신 임직원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현재 중국·인도 등 아시아 지역 전체 컨슈머 비즈니스를 총괄하고 있다.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을 이끌고 있는 그가 밖에서 느낀 국내 산업의 취약점은 무엇일까. 이 부사장은 부족한 인프라를 꼽았다.
“새로운 기업들이 나오질 않는다는 데 아쉬움이 큽니다. 다양한 벤처가 있어야 투자를 하거나 인수하거나 협력 할 수 있는데 그렇질 못합니다.”
도전이 없으면 성과도 없는 법. 그런데 도전하는 주체들 자체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엔 세일즈나 마케팅만 지원할 뿐, 연구개발이나 생산 투자 등에 있어선 자연스레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쉽지 않은 문제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근저엔 또 이공계 기피현상이 있다.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건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로 나가 도전했으면 합니다.”
한국 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중국이나 인도 등 현지에서 우수 인력들을 채용해 해외 시장을 두드리길 바란다는 조언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응용 분야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틈새시장이 있고 여기서도 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당부했다. 이 부사장은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실력있는 기업을 가려내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후 성과를 평가하고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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