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전자문서보관소(이하 공전소) 사업자들의 시름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전자문서 활성화를 위해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이 추진 중인 가운데 이번엔 법무부가 개정안의 내용 수정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 개정안의 요건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개정안의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던 공전소 사업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원본인정 등 핵심 내용 모두 삭제=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전자거래기본법 수정안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전자화문서(스캔문서)의 원본효력 인정 △전자화대상문서(원본)의 폐기 △전자문서의 작성자 본인 확인 등 지식경제부가 내놓은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안의 3개 핵심 항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경부는 개정안에 ‘전자화문서가 전자화대상문서와 내용과 형태가 동일하고 무결성을 갖출 경우, 전자화문서의 원본 동일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무결성’ 등의 용어가 매우 추상적이며 민·형사소송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연구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자화대상문서 폐기 항목은 증거법적인 관점에서 신뢰성 요건을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실무상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생체인식 등 작성자 본인 확인 수단 확대 항목은 헌법상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에 따라 이르면 이달부터 진행될 개정안의 법제처 심의에서는 위의 내용이 모두 제외될 예정이다. 단 공전소의 공인전자문서센터 확대 개편과 공인전자주소 도입 등 일부 내용은 반영된다.
◇공전소, 법 개정만 기다렸는데 허탈해=지난 연말부터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손꼽아 기다리던 공전소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전소 사업이 일대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쪽짜리’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런 기대가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공전소 관계자들은 전자화문서의 원본 효력 인정과 폐기 관련 법 개정 조항은 지난해 말 열린 녹색성장위원회 정부합동보고(지경부, 법무부 등)의 핵심 사항이라고 강조한다. 또 공공기록물의 경우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에 이미 원본 추정 조항이 반영돼 있는데 안전한 보안기술을 갖춘 공전소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미 전자거래기본법에 따라 원본문서의 폐기가 가능한 데도 불구하고 각 기관이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있어 전자화문서 확산에 저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자화문서 보관 시 종이문서를 폐기할 수 있는 명확한 법 조항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공전소 관계자는 “정부부처 간의 이견과 관계 기관의 법적 유효성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전자화문서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전자문서와 전자화문서 관련 내용이 포함된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법무부의 주장대로 수정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이 법안이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법무부가 심각하게 고려해주길 희망했다.
페이퍼리스와 탄소절감 구현 등으로 주목받았던 공전소는 관계기관과 정부부처의 이해 상충, 법률 해석 상의 이견 등 여러 이슈로 사업 활성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2007년 1호 사업자가 나온 이래 8개의 업체들이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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