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3년만의 촛불 데자뷰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촛불 시위 대응은 광우병 촛불 시위 때와 똑같다. 정부 불신, 시위 규모에 맞게 나날이 두터워지는 경찰 차단막, 소통 부재는 시계바늘을 그때로 돌려놓았다. ‘미친 소’가 ‘미친 등록금’으로 바뀌고, 한나라당이 먼저 불을 붙인 게 달라졌을 뿐이다.

 등록금 문제는 지난 봄 대학가의 핫 이슈였다. 1000~2000명이 참석하는 학생 총회. 총장실 점거 농성, 여대생 삭발은 과거 투쟁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지금의 광화문 촛불 시위를 예고했다. 그런데 정부는 적절히 대응하기는커녕 사태만 키웠다.

 대학생들이 명동에서 거리 시위를 한 다음날인 3월 12일,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한 방송에 출연했다. 등록금 마련에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골몰한다는 얘기에 그는 “학자금 대출을 활용해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했다. 교육정책 책임자의 발언은 등록금만큼 비싼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감당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의 속을 왕창 긁어놨다.

 들끓던 대학가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추진’ 발언으로 조금 진정됐다. 하지만 이주영 정책위 의장과 김성식 부의장의 ‘반값 등록금이 아닌 등록금 완화 정책’ ‘B학점 이상 저소득층 장학금 확대’ 발언으로 꺼지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촛불 시위는 더욱 번질 태세다. 저축은행 사태, 검찰 중수부 폐지 논란까지 겹쳐 정부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밖으로, 연령층도 학부모인 50대에 이어 30·40대로 넓어지는 것에 그 조짐이 보인다.

 반값 등록금 주장은 말 그대로 등록금을 반으로 ‘싹둑’ 자르라는 게 아니다. 오세훈 시장처럼 등록금으로 허리가 휠 정도를 넘어 ‘폴더’처럼 접힐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제발 알아달라는 요구다. 또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게다. 이들에게 ‘반값 등록금은 대선 공약집에 없었다’는 얘기나 하니 얼마나 복장 터지겠는가. 요즘 인터넷에 2006년 지방선거부터 2007년 대선 직전까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비롯한 당시 정책위원장들이 줄기차게 외친 공약을 대통령이 뒤집는 발언을 담은 동영상이 다시 떠돈다. 그 이유를 청와대와 여당은 잘 새겨야 한다.

 반값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을지라도 약속을 지켜 믿음을 갖게 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당장 이들을 만나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다짐해도 부족할 판에 뜬금없는 말과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이니 있던 신뢰도 떨어져 나간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다. 그 미래가 지금 지성과 지혜, 통찰력, 창의성과 전혀 관련 없는 스펙 쌓기와 ‘알바’로 밤을 새운다. 이것도 지쳐 이젠 길거리까지 나왔다. 현실에 찌든 이들이 전면에 등장할 10~20년 뒤를 생각하면 암울하다. 그나마 목소리라도 내니 희망이 조금은 보인다. 적어도 이들은 미래 설계는 고사하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온통 시선을 고정한 집권 세력보다 더 멀리 보고 있지 않은가.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