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퇴근을 해도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회사. 은퇴 후에도 새로운 기회를 보장해주는 회사. 협력사를 하청기업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갈 동반자로 여기는 회사.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꿈꾸는 직장의 모습이다. 소위 ‘꿈의 직장’인 이 회사는 구글이나 잘나가는 공기업이 아닌 인천 가좌동에 자리잡은 직원 20명의 ‘키친아트’다.
‘키친아트 이야기’는 창립 이래 연속 흑자 행진, 해외 명품과 당당하게 겨루는 중소기업 브랜드를 만든 키친아트 임직원들의 경영드라마다. 저자는 한 명의 뛰어난 경영인이 아닌 20여명의 직원들과 협력업체가 함께 일궈낸 신화의 밑바탕을 ‘상생’의 실천에서 찾는다.
연 매출 700억원을 올리는 중견 기업이지만 키친아트는 자체 공장이 없다. 협력사에 생산을 맡기고, 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끈끈한 공생 구조 속에서 협력업체들은 신제품을 출시하면 키친아트를 가장 먼저 찾고, 이는 좋은 품질로 연결된다.
키친아트 경영진 중 1명을 빼고는 모두 고졸 출신이다. 창립 초기 협력사 사장들이 전문성 부족을 우려했지만 오랜 현장 경험과 열정으로 이를 불식시켰다. 이 때문에 직원들을 볼 때도 ‘스펙’보다는 실력과 열정을 더욱 중시한다. 새로온 도전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나 업무와 관련한 끊임없는 질문과 요구는 이 곳에서 금기사항이 아니라 미덕이다.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믿기에 일찍 퇴근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은퇴한 직원들을 위해서 ‘제 2의 인생설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 일하면서는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고, 은퇴 후에도 기회가 보장되는 이곳만큼 좋은 직장이 또 있을까?
하지만 키친아트가 처음부터 꿈의 직장은 아니었다. 키친아트의 전신은 1960년대에 설립한 경동산업이다. 1980년대 경동산업은 안전장치도 없어 숟가락을 만들던 노동자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일이 일상다반사일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했다. 노동자들의 분신자살, 주주와 대표이상의 횡령과 같은 내홍을 겪은 경동산업은 결국 2000년 1000억원의 빚만 남긴 채 파산했다.
청춘을 바친 기업이 하루아침에 망한 회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직원 288명이 퇴직금 5000만원을 모아 ‘키친아트’라는 브랜드를 인수했고, 오늘날 키친아트의 기적은 시작됐다. 경동산업 시절 간절히 바랐던 직장의 모습을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라는 사훈에 담았다. 공산주의 사회의 모토같지만 이것이 모두가 주인정신으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에퀴티 모델’을 만든 근간이다.
키친아트가 보여준 희망은 말과 철학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땀과 열정으로 일궈온 희망이기에 더욱 피부에 와닿는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는 20대와 불안한 내일을 걱정하며 어쩔 수 없이 직장으로 향하는 3,40대, 그리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고민하는 기업인들 모두에게 키친아트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정혁준 지음. 청림출판 펴냄. 1만 3000원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