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이 명의를 도용해 서류를 꾸며 대출이 이뤄졌다면 서류상 채무자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
9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대학 휴학생인 노 모씨가 친구인 장 모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맡겼다가 장 모씨가 노씨 명의로 인터넷대출 사이트에서 모 저축은행으로부터 410만원을 대출받은 사건에 대해 노 모씨는 대출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서류과 공인인증서를 갖고 금융기관과 대출 계약이 맺어졌더라도 이 계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대출 취급 과정에서 대리의사가 표현된 것도 아니므로 표현대리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뉴스의 눈
대출상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은 앞으로 본인 확인 또는 대리 계약 때 본인 의사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게 됐다. 앞으로 본인 확인을 소홀히 한 경우에는 서류상 명의자에게는 대출 상환을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은 서류나 절차를 적절하게 밟아 대출했기 때문에 명의자의 채무가 성립된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원은 전후 사정까지 고려해 포괄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쪽을 택했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다만, 수사기관이 법적 책임을 분명히 지우지 못할 경우나 명의 도용자의 소재가 확보되지 않아 조사 자체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명의자가 상환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신분증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인터넷대출은 타인의 신분증만 있으면 쉽게 대출 절차가 완료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의 개인정보 기입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제할 것도 함께 주문했다.
이번 금감원의 결정을 놓고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논란 와중에서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 의지를 표방함으로써 금감원의 현재 입지를 확보하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