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해오는 대로 함. 관례에 따라서 함.
‘관행(慣行)’의 사전적 의미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회사 내부에 부정이 만연해 있다며 강한 쇄신을 지시했다.
그 동안 다양한 도덕적 해이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룹 전체에 번졌고, 이 같은 조직문화는 조직을 병들게 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회장의 발언에 삼성은 물론이고 협력사 전체가 긴장을 넘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관행으로 넘겼던 부분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이런 걱정은 그 동안 관행이라고 넘겨버렸던 일에 대해 스스로도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지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테다. 단지 우려되는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삼성의 엄격함이 자칫 대대적인 중소 협력사의 ‘희생양 만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관행의 한 축에 협력사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여건이 되는데도 편한 길을 찾아 잘못된 관행을 쫒았거나 쫒는다면 그 때는 가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명백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주 제주에 모인 600여명의 중소기업 사장 중 한 명이 “대기업들이 요구할 때까지 (상납하는 걸)기다리면 사업을 접어야지…”라는 말에서는 약자의 비겁함과 함께 고단함이 묻어난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풍자처럼 잘못된 관행이 싫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를 끊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과의 거래 단절은 곧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잘못된 관행을 털어버리려는 삼성의 쇄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중소 협력사가 당당하게 사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