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1년 전 오늘인 2000년 6월 14일 오후 3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주 앉았다.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이뤄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다. 양국 정상은 무려 3시간 50분이라는 마라톤 회의 끝에 오후 6시 50분께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물이 이튿날 공식 발표된 6.15 공동선언이다.
공동선언은 첫째,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둘째,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셋째,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넷째, 경제협력 등을 비롯한 남북 교류의 활성화 등을 포함했다. 여기에 합의 사항을 빨리 실천하기 위한 실무회담 개최 합의를 더해 다섯 가지 내용으로 이뤄졌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양국은 6·15 공동선언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개성공단 조성 등 경제협력이 물꼬를 텄고, 이산가족의 혈육 찾기가 이어졌다. 스포츠 및 문화 교류도 활발해졌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 기조는 이어져 남북정상회담이 한 차례 더 성사됐다.
11년 만에 남북 관계는 너무 달라졌다. 상호 신뢰가 무너진 양국은 교류가 소원해졌고, 핵 개발 위협이 심심찮게 불거졌다. 양국의 대립은 급기야 국지적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최근 북한은 교류 단절을 의미하는 남북 비공개 접촉 내용 공개까지 선언했다.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흡수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구 냉전 세력이나 북한의 혁명 사상으로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는 남파 간첩을 제외하고, 다수의 우리 국민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
신뢰에 바탕을 둔 평화와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라는 관념적 발상이 아닌, 남북 양국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상호 군축은 천문학적 예산 절감을 가져 온다. 최근 가장 큰 이슈인 반값 등록금 문제는 국방 예산을 10%만 줄여도 해결의 실마리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첨단 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비용도 절감이 가능하다.
반목과 대결은 문제의 해결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어렵게 이뤄낸 합의의 가치는 존중하고 계승해야 한다. 2000년 6월 14일 밤 양국 정상이 느꼈던 감동을 오늘의 양국 정상들이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
장동준 국제부 차장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