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적자생존(?)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에 돌아왔다. 지난달 27일까지 4차에 걸쳐 총 297권이 모두 반환됐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강탈해 간지 145년만이다.

 하지만 우리 겨레 최대의 기록문화 유산이자,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는 아직 프랑스 땅에 있다. 우리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압력을 넣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의 가치를 프랑스도 잘 안다.

 기록의 위대함은 문명사회 들어 더욱 빛을 발한다. 전해 들은 것(전문)에 의한 단순 증언이나 진술과 달리, 조그만 메모장의 긁적임 하나라도 ‘기록된 기억(recorded recollection)’은 법정에서 정식 증거물로 채택된다. 이른바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법칙의 예외’다.

 오늘날 각종 초대형 정보통신 시스템 역시, 결국 최초 기록자가 작성한 ‘데이터(data)’에서 비롯된다. 이 데이터가 쌓이고 모여 거대 IT자원이 되는 것이다.

 지난 9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성남시 나라기록관에서 ‘세계기록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영국·일본·스페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날을 기려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연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 첫 공식 행사를 개최했다.

 국가기록원은 최근 ‘2016년 국제기록관리협의회(ICA) 총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우리 기록문화의 유구한 전통을 알리고, 특히 글로벌 디지털 아카이브 시장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개최국은 오는 10월 ICA 연례회의에서 결정된다. 현재 프랑스와 경합 중이다. ICA사무국이 파리에 있고 집행이사회에도 프랑스계가 많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는 게 이경옥 국가기록원장의 말이다.

 하지만 이 원장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알아도, ICA총회에는 관심없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록문화의 후손이지만, 우리는 기록에 유독 인색하다. 사화나 필화를 많이 겪은 민족성 때문이란 그럴듯한 해석도 있지만, 그냥 ‘귀찮아서’일 뿐이다.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류경동 CIOBIZ팀장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