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사고의 첫 번째 원인은 발전소의 잔열제거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지진과 해일로 인해 전기공급이 모두 차단되면서 원자력 발전소 안전의 기본인 붕괴열의 제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장순흥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일본 원전사고의 원인에 대해 이 같이 분석하고 “향후 우리나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자연 재해나 테러 등 내외부의 극한 상황을 가정한 전기공급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를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은 주범 중의 하나는 원전 1, 3, 4호기에서 발생한 수소 폭발”이라며 “비교적 오래전에 건설된 후쿠시마 발전소에는 수소를 제어할 수 있는 설비가 없어 사태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원전에는 시스템 내부에 수소 조절 및 제거 계통이 구비돼 있으나 일부 시스템은 여전히 전기 공급이 필요한 시스템입니다. 이에 따라 피동시설 확충 및 기존 시설 재정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장 교수는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4호기 내에 저장돼 있던 사용 후 핵연료라는 것. 사용 후 핵연료 보관 시설에 냉각수의 공급이 끊기면서 연료가 과열돼 과하게 발생한 수소가 폭발한 것으로 장 교수는 분석했다.
“사용후핵연료의 냉각 시설에도 피동적인 전기시설이 필요한 이유”라는 장 교수는 “이 핵연료는 원자로 건물 내부보다는 멀리 떨어진 별도의 시설에 보관해야 하고 핵연료 보관 건물의 안전성과 견고성 향상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술적인 면 외에도 장 교수는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발생 시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비상계획 매뉴얼을 보완해야 합니다. 원전사고에서는 운전원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진, 쓰나미, 테러, 단전, 항공사고 등 원전 관련 중대 사고의 각종 시나리오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향 조정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절차서를 정비해야 합니다.”
장 교수는 일본 원전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 중 다른 하나로 중대사고에 대처할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이와 함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종의 사령탑으로부터 또 이를 효율적으로 전달해 사고를 수습할 확고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및 전달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전문가 수가 적은 편입니다. 효율적인 원전관리와 운영, 그리고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최상의 판단으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 확보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인력보강과 실질적인 교육 훈련 실시가 필요한 때입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