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IT기업 800여곳에 투자했다. 30년 후엔 5000여개로 늘어난다. ‘오리엔탈 특급 열차’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겠다.”
11년만에 한국을 찾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20일 미래 구상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규모는 작아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북아 IT기업들이 협력해 세계 정보혁명을 선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30년 후 그의 나이는 84세다. 그에 대한 평가나 꿈의 실현 여부를 떠나 먼 미래를 비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몽골 고비 사막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만들자 제안하는 모습에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향기가 난다.
그는 14년 전 고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IMF 위기 타개책을 묻는 대통령에게 그는 당장 필요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가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였다. 동석한 빌 게이츠 회장의 답도 똑같았다. 김 대통령은 “당신들이 그리 말하니 반드시 한국을 브로드밴드 강국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되물었다. “그런데 브로드밴드가 뭐요?”
손 회장은 한국이 국가 정책으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시작해 결국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사이버코리아’ ‘e코리아’ ‘u코리아’와 같은 국가 정보화 전략을 바깥사람들은 이렇게 높이 평가한다.
현 정부도 지난 2008년 12월 국가정보화기본계획을 내놨다. 인프라를 잘 구축했지만 활용과 융합이 부족하다는 반성을 담은 계획이다. 3년이 지났지만 실체가 불분명하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만치 왔는지 중간 점검도 없다.
아이폰 홍역을 치른 후엔 ‘스마트코리아 전략’이 나왔다. 이 또한 계획만 있을 뿐 실행이 없다. 실행 주체인 산하기관들은 가용 예산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았다. 4대강 예산 때문인지 정부가 산하기관의 예산 집행을 억제하는 탓이다.
청와대와 정부에 컨트롤타워라도 있으면 나으련만 구심점은커녕 변변한 전략가조차 없다. 관계 부처 협의도 IT비전만 비껴간다.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있으나 실권도 예산, 인력도 제대로 없으니 말발이 서지 않는다.
고작 5년짜리 국가IT비전이 겉도는 것은 결국 대통령의 의지 부족 탓이다. 일견 이해된다. 저축은행과 반값등록금 사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 일반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갈등,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난항 등 쏟아지는 현안에 가뜩이나 찬밥인 IT가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국가 IT비전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손정의 회장의 비전을 좇는 게 낫겠다. 그의 말은 적어도 마음이라도 안정시킨다. “앞날이 막막하고 잘 안 보일 때 더 먼 곳을 바라보라. 수백㎞ 앞은 물결이 잔잔하고 평온하다. 나는 300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