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단어 중 하나는 ‘혁신’이다. 혁신은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을 혁신에서 찾는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강조가 혁신 피로감을 낳는다고 지적할 정도다.
신간 ‘바로잉(Borrowing)’의 저자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범람하는 혁신에 반기를 든다. 그는 ‘이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다’라고 전제하며, 성공한 기업들의 경영 전략도 사실은 ‘빌리기’에서 출발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머레이는 책에서 스티브 잡스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이나 조지 루카스 등의 광범위한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지만, 잡스가 생각하는 방법을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다고 말한다.
1996년 미국 방송 P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사실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이라는 혁신적 상품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말치곤 의아하다. 잡스가 이런 발언을 서슴없이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창의성의 순간이 어느 날 갑자기 벼락같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잡스는 “혁신과 창의성은 어디 특별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의 것을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라고 말한다.
머레이는 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행위’는 지적인 절도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 기법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 방법론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빌리기를 제안한다. 바로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다.
1단계는 ‘정의하라’다.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순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도 결정된다. 2단계는 ‘빌려라’다. 독창성과 표절은 종이 한 장 차이고, 같은 분야가 아닌 멀리서 빌려올수록 창의성은 더 높이 평가받는다. 3단계는 ‘결합하라’다. 빌린 아이디어들을 서로 연결하고 결합하다보면 딱 맞물리는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4단계는 ‘숙성시켜라’다. 결합한 내용이 해결책으로 숙성될 때까지 생각의 박자에 쉼표를 붙인다. 5단계 ‘판단하라’다. 마련한 해결책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비판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아이디어를 진화시킨다. 6단계 ‘끌어올려라’다. 창의적인 생각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전 단계로 다시 돌아가 정의하고, 빌리고, 결합하고, 숙성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다시 해본다.
혁신의 파도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이 파도를 타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마음의 벽을 깨라’나 ‘다르게 생각하라’처럼 뜬구름 잡는 방법론이 아닌, 이 책은 새로운 혁신 매뉴얼로 손색없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이경식 옮김. 흐름출판 펴냄. 1만8000원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