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연구원이 마련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가이드라인 세부 운영지침(안)’은 사회적 합의와 양극화 해소라는 제도 도입 목적에 최우선 가치를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윤곽이 드러난 운영지침을 보면 양극화 해소를 위해 경제·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합의 원칙=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진행된다. 지정된 품목에 대해서도 법과 제도적인 규제보다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자율적인 시행이 중심이다. 대기업은 자율적으로 시장 진입을 자제하고, 사업을 이양하는 방안 등이 이상적인 그림이다. 따라서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에 마련한 운영지침도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한 결정인 셈이다.
김세종 중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극화 해소라는 중기 적합업종 제도의 도입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지침들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범위=중소기업기본법을 적용하면 제조업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은 대기업으로 분류돼 중기 적합업종 배제 대상이 된다. 이 경우 중소기업 보호라는 목표는 최대한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직원 수 300인 이상 1000명 이하인 중견기업들까지 중기 적합업종 배제 대상으로 분류돼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월만 해도 중소기업기본법을 적용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중견기업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등 갈등이 확산될 조짐이 일었다. 중견기업들은 정책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중기연구원은 양극화 해소라는 중기 적합업종 본래의 도입 취지를 고려해 공정거래법상 기준을 적용하는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쟁점 사항들에 대해서도 이 같은 기조가 반영됐다.
◆탄력적 제도 운용=OEM 허용여부도 금지 또는 허용이라는 이분법적 원칙을 정할 경우 산업별로 이해가 엇갈린다. 같은 중소기업끼리도 품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라는 방침은 정하되, 산업적으로나 중소기업 측면에서나 OEM을 허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드는 경우는 허용하기로 했다.
제도 효율성을 위한 시장규모 제한도 당초에는 일괄적으로 1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사이로 정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하지만 단지 시장규모가 크거나 작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품목이나 업종이 생길 수 있다. 단적으로 뿌리산업만 해도 시장규모가 커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뿌리산업이란 주조·금형·용접 등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 공정산업을 의미한다.
지난 2008년 생산기술연구원 조사에서 금형산업은 시장규모가 5조5000억원으로 조사됐고, 주조 5조1000억원, 용접 4조9300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일괄적인 기준이 적용될 경우 이들 뿌리산업은 중기 적합업종 선정 대상 자체가 안 된다. 결국 효율성을 위해 시장규모 기준은 두되, 점수를 차등화하는 채점기준을 마련하는 탄력적인 조치로 모든 산업을 중기 적합업종 논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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