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자동화기기(ATM) 업계에서 ‘잔인한 입찰방식’으로 간주되는 ‘역경매 방식’이 기업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에 이어 국민은행에도 도입됐다. 구조상 출혈경쟁이 불가피한 ATM 업체들 사이에선 여기저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은 지난 24일 실시한 ATM입찰에 역경매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역경매 방식은 말 그대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가 우선협상 자격을 갖는 방식이다. 은행 입장에선 업체들의 경쟁을 유발해 장비 도입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반면 ATM 업체들은 최종 낙찰의 순간까지 피 말리는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한다.
역경매든 최저가입찰이든 은행들은 일반적으로 시장조사를 통해 최근 타 은행의 낙찰가(예가)보다 낮은 선에서 낙찰 상한선을 잡는다. A은행이 1300만원에 ATM 기기 1대를 도입했다면 뒤이어 입찰을 진행하는 B은행은 무조건 1300만원 이하로 가격을 낮춘다는 의미다.
최저가입찰과는 달리 역경매는 전자입찰로 진행된다. 업체들은 제한된 30분 내에 상대업체보다 더 낮은 가격을 경쟁하듯 써내야 최종 공급권을 딸 수 있다. 자신의 순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상대업체의 순위나 가격을 모르기 때문에 1위가 될 목적으로 파격적인 가격인하도 불사한다. 마감 2분전에 1위가 바뀌면 추가로 2분이 자동 연장돼 그만큼 최종낙찰가는 더 낮아진다.
때문에 역경매 방식을 도입한 은행의 최종낙찰가는 최저입찰가 방식 은행보다 훨씬 낮다. 실제로 최근 최저가입찰 방식을 사용한 농협은 대당 1350만원, 뒤를 이은 신한은행은 이보다 낮은 1322만5000원에 ATM 기기를 도입했다. 하지만 역경매 방식을 사용한 기업은행은 신한은행보다도 160만원 가량 낮은 1160만원에 기기를 도입했다.
한 ATM 업체 관계자는 “과당경쟁 등 여러 이유로 가뜩이나 기기가격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역경매 방식은 업체들의 적자 폭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업계가 밝힌 ATM 적정 가격은 대당 2000만원선이지만 작년 마지막 진행된 입찰의 최종가는 1100만원선이다.
또 다른 업체의 관계자는 “역경매의 폐단을 막는 방법은 업체들끼리 협의를 하는 것인데 이는 담합행위라 불가능하다”며 “최저가입찰제라도 유지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역경매 방식을 도입한 은행들도 ATM 업계의 애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비용절감과 구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역경매 방식을 사용하지만 ATM 업체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전자입찰 대행업체에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 향후엔 역경매와 최저가입찰제를 병행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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