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슈퍼컴으로 자존심 되찾은 일본

 보름 전 일본 과학기술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일본 슈퍼컴퓨터가 세계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이다. 과학기술계는 쾌재를 불렀고, 언론은 칭송가를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게 장기적인 경기부진,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엔고현상, 사상 초유의 초대형 지진, 전력 제한공급 등 켜켜이 쌓인 악재 속에서 이뤄낸 성과라 그 심정 이해된다.

 일본이 슈퍼컴퓨터 최고속도 1위좌를 되찾은 건 7년만이다. 2002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지키다 2005년 이후 미국, 중국에 자리를 내줬다. 기술대국 일본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일본 정부가 나섰다. 2006년부터 민관 공동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이 시작됐다. 5년간 1154억엔(약 1조52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민관 프로젝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프로젝트 시작 후 3년만인 2009년 7월엔 NEC와 히타치제작소가 경영부담을 이유로 중도 탈퇴했다. 이들은 벡터 계열 슈퍼컴퓨터 핵심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남은 건 스칼라 진영의 후지쯔와 정부 측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 뿐이다. 벡터와 스칼라 조합으로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아쉬운 대로 일본 정부는 스칼라만으로 꿈을 실현키로 했다.

 시련이 끝난 건 아니다. 그 직후 정권은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2009년 가을 ‘세계 1위 할 필요 있나, 2위면 안 되는가’의 논리로 집권당은 예산투입 중단을 언급한다. 그 때 강력히 저항했던 집단이 바로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과 과학 원로들이다. 그들은 집권당을 집요할 정도로 어르고 달래 ‘프로젝트 중단’이 아닌 ‘예산 일부삭감’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올해 세계 1위가 된 일본의 슈퍼컴 ‘게이’는 초당 8162조회의 연산속도를 자랑한다. 지난해 1위에서 올해 2위로 밀려난 중국 ‘톈허1호A’보다 3.18배가 빠르다. 한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성능이다. 이러니 일본 과학계에선 콧노래가 절로 나올 법하다.

 며칠 후 일본 언론은 삼성전자 미래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일본기업 사이에서 번지는 ‘삼성 학습론’에 대한 반론이다. 반도체나 LCD 이후 이렇다할만한 신사업을 내놓지 못한 삼성전자를 정면 비판했다. 그간 삼성전자 성공을 부러워하던 일본 언론의 변화된 태도다. 슈퍼컴퓨터 세계 제1의 자신감 회복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학계에 투자하며, 성공 자신감을 쌓고 있는 이 순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4대강 공사와 장마피해를 걱정하고, 통신비·유류가격 인하, 물가를 걱정한다. 기업 내 부정부패를 걱정한다. 어제처럼 오늘도 국회에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진 여야 간 기싸움이 한창이다. 1년 반이나 남은 현 정부의 레임덕을 우려하는 지경이다. 시쳇말로 ‘부러우면 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마당에 일본이 부러운게 사실이다.

 최정훈 정보산업부 부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