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과기 · ICT 정부조직 개편 논의 시작할 때

 “웬 뚱딴지같은 소리?” “정권 후반기에 가당키나 해? ‘레임 덕’마저 벌써 일어난 듯한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 이런 반박이 들린다. 맞다. 정권 초기도 아닌데 정부조직 개편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논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압력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전국의 해양수산 단체와 기관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였다. ‘전국 해양수산발전협의회(해수협)’를 발족하고 해양부 부활을 외쳤다. 국토해양부 통합 이후 해양 정책이 사라졌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해수협은 해양부 부활을 내년 총선과 대선 공약에 채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 가을 사실상 교육부로 회귀한다. 오는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출범 때 원자력안전국이 통째로 빠져나간다. 지난 3월엔 대통령 소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출범과 함께 교과부 과학기술정책실이 없어졌다. 교과부 내 과학기술 조직은 달랑 연구개발정책실만 남는다. 교과부의 올해 과학기술 예산은 교육 예산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공직 사회에서 조직도, 예산도 없다면 정책을 펴지 말라는 얘기다. 교과부에 과학기술은 없다.

 이 뿐인가. 옛 정통부와 방송위를 합친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방송위가 됐다. 오죽 했으면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다음 정권 인수위에 내 경험과 생각을 전달하겠다”고 말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앞세운 여성가족부에 밀려 콘텐츠 정책 주무부처의 위신을 완전히 구겼다. 지식경제부는 ICT 융합산업 정책을 펴나 인프라나 서비스와 연계하지 못해 여전히 겉돈다. 현 정부조직 개편이 3년여 만에 이런 꼴이 됐다. 특히 과학기술과 ICT 관련 정부조직 개편은 처참히 실패했다.

 정부조직 개편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 단골 메뉴다. 새 집권자의 정치 철학은 물론이고 이전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시키기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조직 개편이 이전 정권의 그것과 다른 게 있다면 구체적인 공약과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통부,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단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약속했다. 과기부, 정통부 폐지는 인수위 때 결정됐다. 2008년 2월 16일 인수위의 조직개편안 발표부터 29일 국회 전체회의 통과 제안까지 처리 속도가 ‘KTX급’이다. 중차대한 일에 공론화 과정이 짧으니 갈등은 갈등대로 쌓이고, 예상 부작용을 막을 대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당시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차기 정부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하반기가 적기다.

 물론 정부조직 개편이 출마자와 유권자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선거에 들어가면 실생활과 밀접한 현안에 밀린다. 정당의 공약은 다르다.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하다. 과학기술인과 정보통신기술인들이 총선과 대선 공약에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반드시 넣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다.

 꼭 과기부, 정통부 부활일 필요는 없다. 단순 회귀는 시대 변화와 맞지 않는다. 지금 그리워하지만 옛 과기부와 정통부도 잘못한 게 많았다. 다만, 집권하겠다는 이라면 앞으로 어떤 정부 조직과 방향으로 미래를 열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공약이다. 단순 부활보다 미래 지향적 조직 제시라면 논의 또한 풍성해진다. 과기인과 정보통신기술인은 해양수산인처럼 이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기 정권의 조직 개편 논의에서 또다시 변방인에 머문다. 좌절 속에 할 일이 고작 ‘뒷담화’일 것이다. 아주 나쁜 습관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