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염불보다 잿밥

 기초기술연구회 및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평균 나이는 마흔 줄이다. 사람으로 치면 세상에 의혹이 없다는 ‘불혹’(不惑)의 나이다.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나이이기도 하다.

 출연연이 ‘그로기’상태다. 조직은 강소형 개편 추진으로 어수선하고, 기관은 기관대로 난무하는 투서로 인해 난장판이다. 부처 감사에 국무총리실 공직관리관실(특감반)까지 가세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최근 일부터 들춰보자. 지난주 출연연 2곳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 2명에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의 시찰 비용 3000만원을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터져나왔다. 자금 출처를 몰랐던 해당 국회의원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사건이 있은지 하루도 채 안돼 이번에는 기관장 비리의혹이 제기됐다. ‘룸싸롱’과 ‘2차’란 단어까지 언급됐다. 이 건으로 해당 기관장은 30년 넘는 연구원 생활이 한방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조건 상대방을 죽이고 보자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제보다. 묻지마식 제보는 오는 14일 기관장 공모 마감을 앞두고 있는 5개 출연연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 대한 서울 경찰청 수사도 오는 10월 임기 만료되는 기관장이 타깃이라는 설도 제기됐다. 투서가 발단이 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특별한 사항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이 연구소 위상은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추락했다.

 오는 11일엔 한국형발사체 및 나로호 개발을 위한 개방형 사업단장 공모 최종 선정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지난 7일엔 과학벨트에 들어설 기초과학연구원장 초빙공고가 났다. 오는 9월 30일이 공모마감이지만 벌써부터 L씨가 떼논 당상이라느니, K씨가 낙점받았다느니, 누군 이래서 안된다느니 하는 온갖 억측이 나돌고 있다.

 2주전에는 생명공학연구원이 뒤집어졌다. KAIST가 정권 초 통합을 시도하다 포기했던 일이 다시 불이 붙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 등 막후 개입설이 한창 돌았다. 지금은 장관이 주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련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과학기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투서질’을 꼽을 수 있다. 과거 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최석식 이사장은 취임하며 숨어서 투서하는 사람은 끝까지 발본색원해 처벌하겠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과학기술계 투서 남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이른바 과학기술계 실적쌓기용 ‘출구전략’(강소형 조직개편)도 지금의 혼란을 부추기는 주범이다. 이달 말로 조직개편 D-데이를 잡아놓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준비는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1개월 만에 뚝딱 해치우는 모양새다. 출연연 연구원 상대로 제대로된 공청회 한번 없었다. 그럼에도 자체적으로 공청회와 설명회를 가진 것으로 자료를 만들어 내놓으라고까지 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지금 과학기술계는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모두가 젯밥에만 관심이 있어 벌어지는 일들이다. 마음 비우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드는가.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