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남편의 차량에 GPS추적장치(GPS트랙커)를 몰래 설치하는게 적법한 행위일까, 아니면 불법일까. 가뜩이나 GPS위치추적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이 같은 행위는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배우자의 차량에 몰래 GPS추적기를 설치하는 것은 최소한 미국 뉴저지주에선 불법 행위가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뉴저지닷컴(http://www.nj.com)’, 포춘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저지주 항소법원은 ‘글로스터 카운티’ 경찰관인 ‘케네스 빌라노바(Kenneth Villanova)’가 사설 탐정인 ‘리처드 레너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고측인 리처드 레너드의 손을 들어줬다. 부인에 의해 고용된 사설 탐정이 남편의 차량에 GPS추적기를 설치한 게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노베이티브 인베스티게이션스’사 소속인 사설 탐정 리처드 레너드는 지난 2007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부인에게 고용되어 남편의 불륜 현장 포착에 나섰다. 밤낮으로 남편의 뒤를 쫒았으나 남편은 그의 추적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결국 레너드는 부인에게 남편의 차량에 GPS추적기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고, 부인은 남편 몰래 GM ‘유콘’ 차량의 글로브 박스에 추적기를 설치했다. 몇주 안되어 부인과 레너드는 남편이 애인의 집으로 가는 것을 GPS추적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부인과 남편의 불화는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인 남편은 사설 탐정과 부인이 자신의 차량에 GPS추적기를 설치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으며, 또한 정신적인 피해가 컷다면서 부인과 사설 탐정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나중에 부인과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전 부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지만 사설 탐정인 리처드 레너드에 대한 소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이번에 뉴저지주 항소법원이 사설 탐정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뉴저지주 항소법원은 “GPS추적기가 공공 도로상에 있는 케네스 빌라노바의 움직임을 추적했고, 이로 인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됐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또한 은밀한 지역으로 이동한 순간을 포착했다는 GPS추적기가 근 40일간 남편의 차량에 설치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미국에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판결이 배우자의 외도 또는 불륜을 의심한 사람들의 GPS추적기 설치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금도 ‘배우자의 불륜 현장을 포착할수 있다’며 GPS추적장치의 설치를 조장하는 유통업자나 온라인 사이트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불륜 현장 포착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 GPS추적기 설치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사설 탐정들이 불륜 현장은 물론 보험 사기, 사람들의 뒷배경 캐기, 유아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 GPS추적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GPS추적기의 설치 문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영장없이 경찰이 범죄인 또는 범죄 용의자의 차량에 GPS추적기를 설치하는 것이 적법한 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한 마약상에서 시작됐다. 50Kg의 마약을 유통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마약상 안토인 존스는 지난 2008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존스는 FBI가 자신의 차량에 GPS추적기를 설치해 24시간 추적해 한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사법 당국은 영장없이 GPS추적장치를 설치해 용의자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게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범죄자 또는 범죄 용의자에 GPS추적기를 영장 없이 설치하는 것에 대해 미국은 주법원 또는 연방 법원이 상이한 판결들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 연방 대법원은 영장없는 GPS추적기의 설치가 적법한 것인지에 관한 최종 판결을 내년에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정에 따라 GPS추적기를 통한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시민 단체들은 GPS추적기의 개인 정보 침해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