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51> 굴욕

[인터넷 이디엄] <51> 굴욕

 인기 연예인이나 권력가, 정치인 등이 민망하거나 창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인터넷 용어.

 늘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의 중심에 서고, 사람들의 관심과 카메라의 스폿라이트를 받는 인기인들이 간혹 이런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흐트러진 모습이 포착되면 어김없이 ‘굴욕’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이 표현은 2005년 친선 경기를 위해 방한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유명 축구선수 이케야 케주만에서 유래했다. 세계적 스타임에도 아무도 알아봐 주는 사람 없이 그가 홀로 용산 거리를 걷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사람들은 이 사진에 ‘용산의 굴욕’이란 이름을 붙였다.

 시상식에서 수상 연예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냈으나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느라 정신 없는 수상자가 미쳐 인사를 받지 못 해 뻘쭘한 상황에 놓인 연예인이나, 열심히 공연을 했음에도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해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한 연예인들도 굴욕을 당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공연 중 엉뚱한 실수를 하거나 의상이 잘못 돼 어색한 노출을 하게 되는 경우, 혹은 화면 캡처가 우스꽝스럽게 된 경우 등에도 굴욕이란 표현을 쓴다.

 굴욕(屈辱)은 사전적으로는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이란 뜻이다. 본래 ‘삼전도의 굴욕’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묵직한 뉘앙스를 지닌 단어였으나 인터넷에선 보다 가볍고 장난스런 의미로 바뀌어 통용된다.

 과거엔 미디어 수가 적어 대중이 완벽한 사진들만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지만 최근엔 디카·폰카의 확산과 온라인 미디어의 범람으로 연예인이나 권력자에 대한 사진들이 넘쳐나면서, 이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담은 사진도 널리 퍼지게 된 것이 ‘굴욕’ 신드롬의 배경으로 꼽힌다.

 멀게만 느껴지던 연예인과 권력자 등을 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굴욕’ 사진을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 생활 속 한마디

 A: 카라시대 율이가 겨드랑이에 땀 흘리며 무대서 춤추는 사진이 월스트리트타임스 1면 톱으로 실렸어요.

 B: 저런! ‘카노사의 굴욕’보다 심한 굴욕이군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