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은 사전적 의미로 밥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부쩍 순수한 의미를 벗어나 일자리로 더 많이 인용된다.
‘밥그릇 싸움’ ‘밥그릇 지키기’와 같은 문구가 대표적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밥그릇이 없는 곳은 없다. 기업, 기관, 단체 등 일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임이면 밥그릇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릇 크기가 작거나 혹은 크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처 등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 특권 계층을 대변하는 협회나 단체일수록 그릇 크기는 커지고 단단해진다. 오죽하면 밥그릇 싸움이라는 용어까지 나왔을까.
해묵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변리사법 개정안도 ‘밥그릇 싸움’이라는 멍에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2006년 17대 국회 때 처음 제출된 이 개정안은 7년째 표류 중이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변리사도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미 한 차례 폐기를 거쳐 재발의됐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변호사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변리사도 특허침해소송을 맡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변호사 입장에서는 밥그릇 일부분을 내주는 셈이다.
이 싸움에 법률 소비자인 기업과 개인들만 피해를 본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특허 분쟁은 피할 수 없는데, 현행 국내법으로는 특허기술 분야에 전문성이 거의 없는 변호사만 소송을 맡게 돼 있다. 내 편에 서서 제대로 변론해 줄 기술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
반면에 영국과 일본은 각각 2000년, 2003년부터 법정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특허소송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은 아예 변리사 단독으로 특허침해 소송을 맡을 수 있도록 법률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특허관련 사법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특허출원을 많이 하는 특허강국이다. 지난 20일에는 지식재산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식재산기본법도 발효됐다. 밥그릇 때문에 국민과 기업, 국가가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