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다. 현란한 음악과 함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가면에 쏠린 순간, 사내 얼굴이 바뀐다. 웃거나 우는 모습은 물론이고 위협적인 얼굴 등 바뀌는 가면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이어지며 보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변검(變瞼)’ 이야기다. 뜬금없이 변검이 떠오른 것은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산업을 둘러싼 변화가 마치 변검 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3~4년 간 첨단 디스플레이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외 LCD업체 직접 투자는 물론이고 자국 패널, 장비, 부품소재 업체를 키우기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지난 2009년에만 6건의 직·간접적인 디스플레이산업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흡사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변검과 같은 ‘스피드’다.
해외 LCD업체로는 최초로 현지에 팹 건설을 승인받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도 변검이 떠오른다. 16억 거대 인구를 갖춘 중국 시장 진출은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을 포함한 LCD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중국 중앙 및 성(省)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해외업체들의 직접 투자를 유도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LCD업체가 중국 진출을 신청하자, 중국은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끌며 늑장 승인으로 업체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웃는 얼굴에서 위협하는 얼굴로 바뀌는 변검과 같은 ‘변심(變心)’이다.
중국은 LCD를 넘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육성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 관련 장비 및 부품소재업체를 대상으로 직접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한 업체는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현지 자원 발굴권을 당근으로 제시했다는 얘기까지 있다. 변검은 중국 쓰촨 지방의 전통극으로 고대인들이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얼굴을 변장하던 것에 착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의 얼굴은 무엇일까. 어느 순간에 어떻게 얼굴이 바뀔 것인가. 중국 디스플레이산업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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