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가을에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지난주 미국 애플이 경이적인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콘퍼런스콜 행사장. 병가 중인 스티브 잡스 후계자로 거론되는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이 경쟁사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동안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 못한 시장이 수두룩하다. 지금까지는 초기단계에 불과하며, 앞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회가 있다.”
중국과 아시아, 그리고 신흥 시장을 향한 무차별 공세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애플의 자신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팀 쿡은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은 자신이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확보한 기술은 강력히 보호할 것이다”고 못 박았다. 미래 비즈니스를 가장 잘 이해하는 애플이 무자비한(?) 특허 전쟁까지 예고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경쟁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팀 쿡 COO의 표정은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같다. 세계 언론은 애플의 이런 당당한 태도와 놀라운 실적을 ‘공포스럽다’고 표현했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한치 앞도 예상 못하는 것이 21세기 창조경제시대다. 그러나 분명한 몇 가지는 있다. 창조경제에 접어들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지식재산이 부의 원천이 된다.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기업이 전체 시장을 독식한다. 그래서 애플·페이스북·구글과 같이 유연성을 지닌 젊고 빠른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이를 ‘새로운 글로벌 경쟁 환경 규칙’이라고 규정한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는 젊은 기업의 게임이 될 것이고, 거대기업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겠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애플이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큰 신생벤처’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대한민국 산업과 우리 기업의 대응이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덩치 큰 대기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바로 코앞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다른 경쟁자들이 판을 뒤집어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고작해야, 큰 덩치로 숨을 헐떡이며 쫒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모르고 당하면 어쩔 수 없다고 자위(自慰)라도 하지만, 눈 뜨고 당하는 심정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WBA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전에서 숨진 비운의 복서 김득구. 그 역시 인간이기에 두려운 상대 앞에 힘들어 했다. 레이 맨시니에게 도전장을 내민 김득구는 14회에 쓰러졌고, 뇌사 상태에 빠져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차마 꽃을 피우지 못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두드러진 수식어는 죽음으로 얻게 된 ‘비운의 복서’다. 김득구는 유망주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의 전적을 보면 흔히 ‘천재 복서’라고 불리는 챔피언들처럼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힘겹게 한 계단씩 올라서며 정상의 꿈을 다졌고 마침내 ‘챔피언’이란 칭호를 얻었다.
영화 ‘챔피언’에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주인공 김득구를 향해 던지는 코치의 명대사. “뼈가 뿌러져 아파 죽어도 얼굴에 표시를 내면 안 돼. 약해지는 걸 보는 순간, 그놈은 두 배로 힘이 생긴다고. 이기는 게 승리하는 게 아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 그기 바로 챰피온이야~.”
이제 14라운드 공이 울렸다. 더 이상 부러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두려우면 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애플만큼이나 경쟁을 사랑하기에….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