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떠돌던 조직적인 북한 `해킹 부대`의 실체가 사실상 처음으로 경찰 수사망에 포착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들 해킹 부대는 김일성대 출신 엘리트로, 국내 게임업체를 해킹해 발생한 수익을 북한 당국에 정기적으로 상납하며 김정일 통치자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국내 한 P2P사이트의 개인정보 66만 건을 해킹했던 것으로 확인돼 대남 테러전 발생시 무방비 상태로 농락당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산업기술유출수사팀은 북한 개발자들과 공모해 국내 유명 온라인게임의 오토프로그램을 불법 제작해 유포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17명을 적발해, 이 중 정모(43)씨 등 5명을 구속하고 정모(37)씨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김모(37)씨 등 9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김모(38)씨 등 2명을 수배 중이다.
오토프로그램이란 게이머의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캐릭터의 경험치를 올리고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속임수 소프트웨어다. 소위 중국 등 해외에서 `작업장`에 수백대 컴퓨터를 설치해 두고 오토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이버 캐릭터 및 아이템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불법 수익을 올린다.
4일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정씨 등은 지난 2009년 6~7월부터 중국 흑룡강성, 요녕성 등지에서 북한 개발팀을 사업파트너인것처럼 초청해 생활비와 숙소를 지원하면서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토록 한 것으로 밝혔다.
북한 해커들은 숙소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5개월간 중국에 머무르면서 `리니지팀`과 `던파팀`, `메이플팀` 등 이씨 등이 원하는 게임별로 5명 안팎의 팀을 꾸려 오토프로그램을 제작 작업을 했다.
이들은 이렇게 제작한 오토프로그램을 매월 1만7000원~1만8000원의 사용료를 받고 중국과 국내의 판매총책에게 공급했다. 국내 판매총책은 이를 다시 전국 각지 온라인게임장에 2만3000원~2만4000원에 판매했다. 이들이 올린 수익은 지난 1년 반 동안 64억여원. 수익금의 절반은 북한 당국에 흘러 들어가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해커들은 일당에게 숙소와 생활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개발한 오토프로그램 사용료의 55%를 로열티 형식으로 매달 받았다. `리니지팀`과 `던전팀` 등 게임별 프로그램 개발팀에 지급된 사용료가 많게는 한 달에 1억8000만원에 달했다.
북한이 남한의 개인정보를 빼낸 정황이 포착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의자의 이메일 내역을 조사하다 보니 아이디와 비밀번호 66만여건이 나왔고, 출처와 사용목적을 물으니 북한 개발자들이 해킹을 해서 보낸 개인정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에 경찰이 국정원과 공조수사를 펼친 결과, 이메일 발신처는 김이철이라는 북한 개발자의 이메일로 확인됐다. 게임 작업장에 도용할 게임 계정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해킹한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해당 정보는 북한의 사이버테러전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핵심 피의자인 정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압수한 악성코드 프로그램 등을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측은 "리니지(서버)는 해킹 당하지 않았으며 온라인게임 서버를 해킹해서 오토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오토프로그램은 서버를 해킹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라는 설명이다.
◆북한의 개발 능력은 = 이번에 국내 게임사를 해킹하고 오토프로그램을 제작한 30여명의 북한 컴퓨터 전문가들은 모두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 출신들로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분야를 전공한 영재들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대부분이 20대 초, 중반의 젊은 나이다.
이들은 북한의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 산하 `릉라도정보쎈터`와 북한 내각직속 산하기업인 `조선콤퓨터쎈터(KCC)`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는 표면상으로는 무역회사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공급하는 소위 `39호실`의 산하기관이며 `조선콤퓨터쎈터`는 1990년에 설립된 북한 최고의 IT연구개발기관이다.
경찰은 이들 북한 개발자들은 피의자들로부터 프로그램 판매액의 절반 또는 프로그램 사용료의 절반을 받았으며 북한 당국은 이들로부터 매월 1인당 500달러씩을 받아 챙겼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북한 당국이 컴퓨터 전문가를 대거 동원해 해킹 등 다양한 사이버 범죄에 깊이 관여하고 무역회사를 가장해 외화벌이를 하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해킹을 바탕으로 한 사이버 테러의 우려도 있어 관련된 불법 프로그램을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re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