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무이파가 e스포츠 종주국으로 도약하려는 ‘대한민국의 꿈’을 삼켜 버렸다. 중국 상하이에서 ‘e스포츠 세계화’ 초석을 마련하려던 국내 e스포츠 업계 희망이 수포로 돌아갔다.
태풍 무이파가 북상하면서 상하이시 등 중국 정부가 지난 6일 오후 상하이 세기광장에서 개최 예정이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전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태풍으로 인해 e스포츠 프로리그 결승전이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e스포츠 글로벌화를 취임 일성으로 내걸고 e스포츠 종주국 위상 정립에 주력해 온 김준호 협회장 노력도 빛이 바랬다. 협회는 당초 중국 게이머에게 한국 e스포츠 문화를 보다 잘 알리기 위해 그동안 국내에서 치렀던 행사를 상하이에서 열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협회는 조만간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전 장소 및 시기를 재공지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5일 태풍 예상 경로인 상하이 인근 지역인 저장성 주민 20만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고, 같은 날 상하이시에도 태풍 피해 경고를 내렸다. 한국e스포츠협회와 방송사 측은 태풍의 경로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상하이시를 상대로 설득을 시도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승전을 4시간여 앞두고 상하이시 측은 태풍 피해 및 주민 안전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행사를 취소시키고 장내 방송으로 태풍으로 인한 경기 취소 및 환불 방법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온게임넷과 함께 한·중 동시 생중계를 맡은 상하이TV 측이 방송장비 및 중계차량을 철수시키면서 상하이 결승전은 진행이 불가능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행사장 주변에서 입장을 기다리던 1000여명 이상 중국팬은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번 상하이 대회는 부산 광안리 등 국내를 벗어나 처음으로 해외에서 치러지는 프로리그 결승전으로 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해외에 한류 콘텐츠를 수출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청사진 아래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로에 대형 야외무대를 설치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SK텔레콤과 KT는 각각 50여명씩 총 100여명의 서포터즈도 중국으로 초청했다.
중국 내 e스포츠 열기를 증명하듯 유료로 판매된 1000여장 이상 표는 10분 만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매진됐다. 현장에도 헤이룽장성, 산둥성 등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팬이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멀리 대만에서 단체로 찾아온 팬도 있었다. 김택용, 서지수, 이제동 등 국내 프로게이머 이름을 또렷하게 연호하는 이들은 한국 e스포츠에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한 중국팬은 “이 경기를 보기 위해서 산둥성에서 4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서 “온종일 기다려서 다리가 마비될 지경이다”며 억울한 심정을 전했다. SK텔레콤 T1 김택용 선수 팬이라고 밝힌 이 중국팬은 취소된 행사장을 떠나지 못하고 발만 굴렀다. 주최 측은 행사장 주변 사람에게 티셔츠를 나눠주는 등 팬을 달래는 모습도 보였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경우는 2003년 KTF 프로리그 결승전(동양오리온 대 한빛스타즈) 이후 두 번째다. 당시 국내에서 올림픽공원 야외경기장에서 진행된 이 경기는 일주일 뒤에 치러졌다.
상하이(중국)=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
김원석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