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요금 인상 계획이 발표됐다. 물가 억제 정책에 상반된 요금 인상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외국에 비해 너무 싸다는 게 정평이다. 저렴한 전기요금은 생활비 절감과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나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한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는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이다. 원자력은 안전도를 더 높이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2020년까지 10%의 전력을 의무적으로 생산하려면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재생 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비싸다는 데 있다. 신재생 에너지가 더 저렴해지는 분기점(그릿 페리티)에 한시바삐 도달해야 한다. 독일은 우리나라 전기요금보다 2.7배 비싸니 먼저 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다. 일단 이 지점에 도달하면 정부가 보조하지 않아도 시장경쟁력이 확보돼 신재생 에너지의 대량 보급이 가능하다. 전기요금이 너무 낮으면 이 분기점이 요원하다. 전기요금이 낮다고 좋아할 수만도 없다.
어떻게 전기요금 부담을 가중하지 않고 녹색성장을 이루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두 원칙만 고수하면 가능하다. 첫째, 화석연료의 가격 인상분을 보조하는 1차원적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가격의 인상분 보조는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보상하는 2차원적 정책을 적용해 민생 부담을 덜어 준다. 예를 들어 백열등을 발광다이오드(LED)등으로 바꾼다거나 에너지 절약형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데 전기요금 인상분만큼 쿠폰을 사용하도록 하면 된다.
저소득층에게는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에도 쿠폰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자기 선택에 따라 전력소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민생과 물가 억제의 중요성이 강조되다보면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2008년도에 석유가격이 130달러를 넘어섰다. 서민층이 유류비용의 증가로 고통을 받자 정부가 10조5000억원을 지원하는 유가 환급제를 시행했다. 석유 소비와 수입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중교통비나 에너지 절약제품, 생필품 구입에 사용하는 비용으로 환급해주면 석유 소비가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서민의 생계관점에서도 선택 폭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최근 공영주유소나 대안주유소라는 정책이 논의된다. 휘발유 가격을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여 주고자 하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이 정책도 1차원적 해법으로, 화석연료의 소비를 권장한다. 유통구조 개선이나 부당한 가격에 대한 대응책은 바람직하지만, 휘발유 수입과 소비가 늘어나는 인프라를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에 투자하고, 연비가 낮은 자동차 구입을 보상해야 석유 소비를 줄여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이처럼 석유소비를 줄이는 2차원적인 방안이 바람직하다.
이재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jk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