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위기 관련 뉴스는 얼핏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돌입했고, 국가는 디폴트(지급불능) 직전 상황까지 갔다. 비단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헝가리 등 국가 역시 신규 부채가 기록적인 규모에 이르렀다. 국가가 빚을 내 빚을 갚는 ‘국가부도’ 유령이 전 세계를 뒤엎는 징후가 시작된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국가부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올해 3월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800조원을 돌파했고, 금융업계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은 이미 적정 수준 이상의 빚을 떠안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들의 붕괴를 막기 위해 빚을 지며 개입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국가부채가 GDP의 30%에 달한다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 역시 국가부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연일 쏟아지는 경제기사 속 우울한 지표들은 국가부도의 위기를 체감하게 한다. 과연 우리도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은 상황을 맞게 될 것인가.
‘국가부도’의 저자 발터 비트만은 국가부도를 최근에 나타난 경제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국가부도는 국가의 역사만큼 오래됐기 때문에 과거 유사사례를 반추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마시절부터 국가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했고, 잦은 전쟁과 관료주의 팽창으로 자금차입(공물, 조세)을 늘리던 로마는 재정적으로 망하자 존재가 붕괴하고 말았다.
근대까지 국가가 빚을 지는 이유는 대부분 전쟁이었다. 전쟁 발발로 급속히 늘어난 군비지출은 늘 신규 차입으로 조달됐고, 전쟁이 끝나면 후속적인 재정 부담이 덮치게 되는 구조다.
현대에 들어서 부채는 더욱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낳은 주택 담보대출, 민간 기업 자금 조달, 국가가 운영하는 각종 사회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지는 채무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 및 사회 시스템 문제가 부채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 문제는 이 개혁을 어떤 방식으로 이뤄 나갈 것인지다. 저자는 사회보험 분리, 공공예산 재편 등으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언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지속되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펼쳐질 방향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에 개인 투자자들이 선택해야 할 길로 분산 저축과 돈을 집안에 보호하라는 다소 엉뚱한 해법을 제시했다.
국가 부채가 발생하기까지 과정과 국가채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분석해 낸 날카로움이 대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발터 비트만 지음. 류동수 옮김. 비전코리아 펴냄. 1만 5000원.
이수운기자 p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