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나는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로봇이다

[ET단상]나는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로봇이다

 전대영 케이엠씨로보틱스 사장 dyoung@kmcrobot.com

 

 “1가구 1로봇 시대가 온다. 20세기가 PC시대라면 21세기는 로봇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로봇 산업이 반도체 산업을 능가할 시기가 올 것이다.”

 로봇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이런 장밋빛 전망들은 산업이나 시장 데이터에 근거하기 보다는 예언 수준에 가깝다. 아직 지능형 로봇산업 규모가 자동차·반도체·조선 등에 비해 아주 작은 수준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고 또 반복해서 말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현명한 태도가 어떤 일을 이루는데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짐 스톡데일이 겪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유래했다.

 월남전 당시 미국 해군제독이었던 그는 포로로 잡혀 모진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스톡데일의 생존비결은 현실에 기반한 낙관주의 때문이었다. 당시 같이 수용된 포로 중에서는 곧 석방될 거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에만 기대고 있던 낙관주의자들이 제일 빨리 지치고 포기하게 돼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 로봇업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스톡데일 제독의 태도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금물이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가 좀 더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로봇업계 현실에 발을 딛고 섰을 때 지금 당면한 최고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더욱 철저하게 로봇산업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작은 시장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로봇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로봇청소기가 아니라, 아직도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아톰·로보캅·트랜스포머 등이다. 언론에서 다루는 로봇이야기들은 대부분 세계 최초나 세계 유일 또는 세계 최고 로봇들이다.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용으로 또는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이런 로봇들은 사람과 아주 유사하거나 특정 영역에서는 사람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감탄하지만 시장에서 살 수는 없는 것들이다.

 기업들도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로봇에 유혹을 느낀다. 많은 로봇업체들이 ‘장사’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정부과제 지원을 받기 위해 또는 기업브랜드 홍보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아이템 개발에 몰두해왔다. 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로봇은 ‘사서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로봇청소기 업체는 자동청소기란 이름을 붙여 판다. 로봇이란 말이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로봇청소기 업체도 초기에 마케팅 차원에서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 진열하고 팔았다.

 이제는 ‘더 신기하고 더 새로운 로봇이 뭐가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더 싸고 더 품질이 좋고 더 필요한 로봇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것의 이름이 로봇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그래야 시장 창출로 이어질 수 있고 국민들이 로봇을 실생활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거친 후에야 비로소 로봇산업이 신기루나 쫒아가는 허황된 산업으로 전락하지 않고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고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해주는 진정한 고부가가치 국가 성장동력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는 로봇 산업계가 간절히 원하는 목표에 꼭 도달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