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 IT인들이 부끄러워 해야 하는 이유

 예상대로였다. 오히려 강도가 조금 더 셌을 뿐이다.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개발을 주도할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신임원장 3배수 후보를 뽑는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론은 철저히 무시됐다. 예측대로라면 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정보기술(IT)계의 기대는 없던 것이 됐다. 애초부터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희망마저 송두리째 뽑아갔다.

 IT인들이 누구인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실사구시(實事求是) 지식인 그룹이다. 두뇌집단이라고도 하는 지식인들의 허탈감은 그래서 더욱 크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을 주력으로 하는 IT산업은 수출 전체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등에 탑재돼 가격 경쟁력 제고에 한 몫 하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그 역할은 더욱 커진다.

 모두 정보통신부 시절 기반을 닦은 것들이다. 그 중심에 IT인이 있다. IT인은 특히 과학기술계와 함께 이 나라 성장동력, 먹을거리를 일군 주역이다. 미래를 향해 웅비할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상징성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KISDI는 정권에서 IT·과기계를 바라보는 바로미터라는 것이다. 정권 말기지만 신임 원장 선임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수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지고 있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 심사위원 속성을 알면서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역할이라는 건 뻔하지 않은가. 관행이란 이름도 그들에겐 꽤 친숙하다.

 1년 후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 성장동력 IT컨트롤타워가 사라진 후 절치부심했다던 IT인들의 내년 모습이 조금 일찍 다가왔을 뿐이다. 단지 그간 정치적 이유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 뿐이다.

 IT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IT협·단체들은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학자들의 단체인 과총이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딴판이다. 협·단체·학회들을 묶자던 ‘IT총연합회’조차 지지부진하다.

 고마운 일도 있다. 수면 하에 잠복해 있던 IT컨트롤타워에 대한 논란을 재점화 시켰다는 것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다볼 시간도 줬다. IT인들의 결속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얘기하는 IT인들이 많아진 이유다. 기회의 창을 여는 것은 정치라는 얘기가 솔솔 나온다. IT인들의 표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결연한 의지도 읽혀진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총선을 대비한 정당별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대선캠프 진영에서도 팀이 꾸려지고 있다. 뜻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답보상태였던 협·단체 연합체 얘기도 나오고 있다. IT인들이 마침내 유권자 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반면, 각 부처는 IT조직의 ‘완전한’ 재단을 꿈꾸고 있다.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일부 부처는 이미 이를 위한 조직을 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조직에 몸담고 있는 나는 누구이고 학계, 연구계, 업계, 정계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작은 기득권에 연연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조직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가를 위한 것인가. 혹시라도 부처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조직원으로만 충실한 건 아닌지 겸허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