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인프라 구축이나 IT 소비 관점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시야를 좁혀 공급 관점에서 보면 변방국가의 하나로 분류된다. 단말, 서버, 스토리지, 미들웨어, 응용소프트웨어, IT서비스 등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일부 단말과 보안솔루션 등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제품이 거의 없다.
최근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절호의 기회가 우리에게 오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은 1990년대 중반 선진국발 디지털 혁명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적 대 전환을 미리 예측하고 선도적으로 대처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터넷 선진국이 됐다.
전자제품 기업은 일본 유수기업을 따라잡고 세계 시장에서 강자가 됐다. 산업전반의 변화(Transformation)와 더불어 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인터넷 응용산업이 태동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이 제안한 NII(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개념을 당시 중진국에 불과하던 우리나라가 단기간 내에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다소 무모한 목표를 설정했고,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엘 고어의 NII 이후 20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1년 2월 미국의 연방 CIO인 비벡 쿤드라가 발표한 ‘연방 클라우드컴퓨팅 전략(Federal Cloud Computing Strategy)’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는 ‘클라우드는 IT의 근본적 전환(Cloud is a fundamental shift in IT)’이라고 규정하고, 미국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으로 연방정부의 정보시스템을 단순히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간을 보면 컴퓨팅산업 특히 SW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그러면 한국은? 우선 전자정부사업의 클라우드 환경 도입시 공개SW 적용을 대폭 확대하고 조달관련 전 과정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우리나라 GDP(약 1500조원) 중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0조원)나 된다. 정부가 가장 큰 구매자다.
다음은 공개SW를 활용하는 중소 IT솔루션 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과 이를 통한 전문가 계층의 대폭적인 확대다. 현재와 같이 패키지화된 운용체계(OS), 미들웨어, 응용SW에 의존적인 상황에서는 클라우드 산업에서도 여전히 IT소비 강국으로 전락할 것이며, 과거와 같은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다.
실제로 미국의 유수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도 초기엔 초라한 벤처에 불과했다. 지난달 내가 만난 아마존 기술자는 오픈소스를 활용해 내부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코어기술을 습득했고, 내부적 기술혁신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었다고 귀띔했다.
SW 엔지니어가 유망직업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의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은 외형에 비해 고용은 그다지 높지 않고 보수 수준도 낮다. 보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에 우리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만들어 주고, 시간이 좀 더 걸려도 기다려 주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2009년 랭킹 10대 직업 중에 5위가 SW 엔지니어, 6위가 컴퓨터시스템분석가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직업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전망지표개발’ 보고서 유망직업군에 컴퓨터, SW 분야는 아예 없는 실정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창의적 지식기반사회는 단순히 정보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것만으로 될 수 없다. 한 국가 내에 내재된 SW 역량의 수준을 올리고, SW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면 20년만에 찾아온 기회는 바로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이영로 국가표준코디네이터(클라우드컴퓨팅 부문) yrlee37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