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초대형 인수합병(M&A), 그 다음 주인공은?

 전략이론가 허먼 칸(Herman Kahn)은 1960년대에 미래 예측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그는 시나리오 기법(scenario writing)을 활용해 비교적 가까운 미래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 실제로 1968년에 ‘미래의 체험’이라는 저서를 통해 100가지를 예측했는데 이 중 95가지가 적중했다. 현금자동지급기 보급과 비디오레코더(VCR) 등장, 위성항법장치(GPS) 활용, 초고속 열차 개통 등이 그가 맞힌 대표적인 예측 사례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도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을 통해 이슬람 에 의한 미국 주요 건물 폭발, 즉 9·11테러를 정확히 예측했다. 그는 국제 정황상 2000년이나 2001년에 뉴욕 또는 워싱턴의 상징적인 건물이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내놓았으나, 미국 정부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예측은 현실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시나리오 플래닝이 독보적인 미래 예측 기법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지난주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를 발표하자,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미 예상했던 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특허 포트폴리오에 대한 해법으로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할 수밖에 없음을 삼성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예견해왔다는 의미다. 최 부회장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 역시 미래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이미 세워뒀다는 얘기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통해 앞으로 등장할 여러 상황들을 비교적 명료하게 그려볼 수 있다. 미래 상황에서 맞는 대응책을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나리오도 결국엔 상상속 얘기일 뿐이다. 너무 앞서거나 아예 틀린 내용도 많다. 미래학자의 개인 통찰력이나 주변 정황, 기술 트렌드, 상상력이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주요 도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했다. 특히 지식재산은 특정 기업과 시장에 대한 미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는 최적의 도구로 인정된다. S&P500기업의 시장가치 요소 중 지식재산권과 특허 등 무형자산 비중은 1985년 32%에 불과했지만 2005년엔 79%까지 증가했다. 오는 2025년에는 전체의 95%를 넘어설 전망이다. 생산과 기술개발, 마케팅까지 아웃소싱 하는 상황에서 기업 가치와 경쟁력도 지식재산 확보로 결정된다.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지식재산 관계만 분석해도 기업 간 인수합병(M&A)의 미래 시나리오를 충분히 그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를 아무런 근거 없이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 광개토연구소가 제공하는 특허분쟁예측시스템(risk.PatentPia.com)으로 글로벌 IT기업 간 특허 분쟁 네트워크를 그려보면, 왜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는지가 분명하게 나온다. 모토로라가 지식재산을 무기로 공격한 대상을 보면 1위가 마이크로소프트, 2위가 애플이다. 특허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지식재산을 먼저 선별한 후, 이 분야에 강한 기업과 취약한 기업을 추출한다. 그러면 다음번 ‘초대형 M&A(메가 빅딜)’의 주인공은 누가 될 지 맞춰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측은 빗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 시나리오에 소홀할 수 없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 다가올 악재(惡材)를 막기 위해서다. 전문가로서 예측이 빗나가면 당연히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 부끄러운 것은 틀린 예측이 아니라 곧 다가올 미래 모습에 눈을 감고 있는 태도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