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전쟁, 꺼지지 않는 불씨](하)콘텐츠 역량 강화 해법은 무엇인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파이를 나눠야 할 사람이 늘어나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병이어(五〃二漁)의 기적을 바랄 수는 없다. 모두 배고프게 먹거나 경쟁자를 제거해서 소수만 먹으면 된다. 크기를 키울 수 없다면 파이의 재료를 바꿔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국내 미디어 시장은 어떤 해법을 쓰는 게 바람직할까.

 ◇업계 “공생 지도 만들어야”=우리 업계는 끊임없이 경쟁자를 배제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반대하고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든 막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는 다양한 플랫폼을 원하게 돼 있다. 결국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부 “규제 풀고 시장 역할 유도”=정부는 재송신 협의체에서 옵저버(관찰자)로 참여, 직접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시장 주체 간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 하지만 사활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양 당사자가 문제를 매듭짓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 관계자는 “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될지 의심스럽다”며 입을 모았다.

 정부는 경쟁을 늘리면 파이가 커지게 돼 있다는 논리를 편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월 “국내 광고 시장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약 14조원)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방송통신위원회 1기는 이런 기조 아래 IPTV·종합편성채널에 사업 허가권을 내줬다. 플랫폼·콘텐츠 양쪽 모두 숫자가 늘어났다. 이들이 직접 수익원을 넓히는 데 애를 먹자 정부 차원에서 광고 규제를 풀겠다고 나섰다. 경쟁 체제라서 파이가 커지는 게 아니라 정부가 인위적으로 파이를 키우겠다는 것. 하지만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정부 정책이 규제를 풀어 시장을 넓혀주는 데는 한계는 있다.

 ◇콘텐츠의 가치를 객관화=전문가들은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콘텐츠와 플랫폼의 가치를 객관화 해주는 지표를 만들어서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대원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복숭아를 팔 때도 백화점·재래시장·농협공판장·직거래 등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하고 복숭아 가격에는 생산자와 유통점의 가치가 모두 반영된 것”이라며 “방송 시장에서도 두 가치를 모두 인정하고, 서로 얼마만큼 기여하는지 객관적인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경제학·공학 등 이해관계자가 모두 모여서 가치를 수치화 하자는 것이다. 객관적인 틀을 놓고 서로 양보하는 방법을 찾으면 해결도 쉬워진다. 정부와 업계가 공조해서 전문 위원회를 조직하는 형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콘텐츠의 가치를 저작권 차원에서만 보는 현 상태를 돌려놓을 필요성도 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처럼 저작권법을 기준으로 내놓은 판결에만 기대면 플랫폼의 가치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현실과는 동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협력을 통해 재료를 바꾸자”=미국의 동영상 서비스 업체 훌루(hulu)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구글·아마존·야후·디렉TV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SK텔레콤도 여기 참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표적인 플랫폼 글로벌 기업들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의 디지털 세계는 구글과 유튜브처럼 플랫폼과 콘텐츠가 협력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비아콤은 타임워너케이블·케이블비전시스템즈에 스마트패드용 N스크린 서비스에 자사 콘텐츠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였다. 2달 정도 벌어진 이 싸움에서 양측은 서로 원만하게 합의했다. 양 기업과 시청자 모두 납득할만한 결과물을 냈다.

 국내 KBS와 KT의 협력은 주목할 만하다. KT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KBS가 콘텐츠를 전송하는 새로운 모델을 발굴했다. 이에 따르면 파이를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기존 파이의 개념을 바꿔 놓는 신 서비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방송콘텐츠도 주문형비디오(VoD)나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보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실시간 방송 송출에 골몰하다간 신서비스의 파도에 함께 잠겨버릴 수도 있다. 파도를 넘기 위해 함께 배를 띄우기 위한 고민을 해봐야 할 때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