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3F의 성장 동력 여성벤처

[월요논단] 3F의 성장 동력 여성벤처

얼마 전 한국여성벤처협회 소속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한 자리였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여성 CEO들이 겪는 이런 저런 고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성으로서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점으로 ‘선입견’을 꼽아 다소 의외였다. 경영 상황이나 성과, 성장 가능성을 보기도 전에 여성이 운영한다고 하면 우선 미심쩍은 눈길부터 보낸다는 것이다.

 이제 여성 경제활동은 가사나 육아 같은 가정 범주를 넘어 사회 전체 관심사로 확대됐다. 그런데 ‘알파걸(Alpha Girl)’ 즉, 모든 면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여성들이 막상 사회에 나와 남성 위주 비즈니스 토양에 뿌리내리지 못 하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 임원도 최고경영자가 돼야 한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 회장은 지난 1997년 자신의 저서에서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한다”고 전제한 뒤 이를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학생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지르고, 각종 국가고시 수석을 휩쓴다는 소식은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100대 기업의 여성 비율이 23%에 불과하고, 관리직은 7.1%,임원은 1.1%에 그친다. 가장 많은 여성 임원을 보유한다는 삼성도 전체 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출발선은 같아졌지만, 여성이 뒷심을 잃는 이유에 대한 의견은 관점에 따라 갈린다. 조직보다 가정사를 먼저 챙기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기업 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 즉 ‘유리 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여성벤처협회 CEO들을 만나보니 최고경영자가 되어도 여성이란 이유로 부딪히는 안팎의 어려움이 적지 않은 듯했다. 자전거의 한 쪽 바퀴는 여전히 새는 셈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출판·패션·광고업계 등 여성의 섬세함과 유연함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여성 CEO 수가 증가했다. 10여년 전부터 인터넷 비즈니스 등 지식기반산업으로 진출이 두드러진다. 권위보다 소통을 중시하는 여성 특유의 장점, 즉 ‘핑크 파워’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여성벤처협회만 하더라도 최근 3년 사이 3배 이상 회원사가 늘어 1700여곳에 달한다. 전체 벤처기업 중 여성 CEO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다. 협회는 ‘10-10-10’을 목표로 삼았다. 전체 벤처기업의 10%, 코스닥 등록업체 10%, 매출 1000억원 이상 업체 10%를 겨냥한다는 뜻이다.

 여성이 CEO로 있는 벤처기업은 에너지·환경·소프트웨어 등 지식기반 서비스 분야에서 강세가 뚜렷하다. 지식이 주된 생산요소이고, 인적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분야다. 제조업과 맞물려 전후방 산업 성장을 촉진하고 제품 부가가치를 높일 분야여서 여성 CEO 증가 추세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를 움직여 온 성장동력은 제조업이었다. 더 나아가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여성벤처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교수가 일찍이 21세기 기업 경쟁력 원천이라고 예견했던 3F, 즉 Female(여성), Feeling(감성), Fiction(상상력)에 꼭 들어맞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지식기반경제의 소중한 인적 자원들이 마음껏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문화를 개선해 나가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때다. 행복한 경제선진국을 향해 힘찬 페달을 돌리려면 두 바퀴가 모두 온전해야 한다.

 나경환 생산기술연구원장 khna@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