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 녹음기 등 전자제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에 일괄적으로 사전에 저작권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다.
유사한 법안이 소비자 및 전자산업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반대에 부딪혀 지난 1993년 이후 두 번이나 폐기됐으나, 또다시 입법화가 추진되면서 저작권 관련단체들의 지나친 권리 추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종혁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사적복제 보상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저작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안번호 12576)을 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한국복사전송권협회 등 신탁관리단체들은 모두 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 법안에는 이종혁 의원을 비롯해 임동규·이한성·신영수·김옥이·황진하·이진복·김을동·정옥임·정갑윤 의원이 참여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이용될 수 있는 녹음기·녹화기 또는 복사기 등과 같은 복제기기의 제작자 또는 수입자 등에게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따른 보상금을 저작재산권자, 출판권자, 저작인접권자 또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 등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보상금수령단체가 이를 행사토록 하고 있다.
이종혁 의원실 임병국 비서관은 “가정용 복제기기가 널리 보급된 현재에는 저작재산권자 등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고 전제한 뒤 “다만 사적복제의 대상인 기기와 매체를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소비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상금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 등이 이 제도 도입의 장애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법안이 현행 저작권법 30조에서 규정한 개인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도 보상금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에 비판적 진영은 사적복제 보상금을 전자 및 IT회사에 부과하는 방법을 통해 보상금을 손쉽게 거둬들이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저작권 분야 한 전문가는 “복사기 컴퓨터 등 모든 전자기기에 사전에 일괄적으로 보상금을 걷자는 것으로, 1999년 이후로 도입된 나라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저작권법 제30조는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를 허용하고 있다. 즉,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감안한다면 적용대상이 전 IT기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디지털기기가 컨버전스되면서 복사기뿐 아니라 앞으로 휴대폰·노트북PC 등 모든 제품이 부과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과 아일랜드 우리나라는 사적복제 보상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독일·미국·스페인 등은 도입·적용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임원선 문화부 저작권정책관은 “1993년도에 실패했고, 2000년대 들어서도 산자부(현 지경부)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면서 “검토하고 있지만 적용범위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표>독일의 녹음, 녹화와 관련된 사적복제보상금요율 현황
<자료:심재철 의원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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