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국가 R&D 규제와 동반성장

[데스크라인] 국가 R&D 규제와 동반성장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원 사기가 바닥이다. 정부가 26개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 현장 의견을 무시한 채 조직 개편을 불도저식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15개 출연연을 대상으로 벌인 감사에서 연구개발비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불안한 주변 여건으로 연구원들은 일감이 손에 잡힐 리 없다.

 하지만 연구원 업무 의욕을 현실적으로 더 옥죄는 것은 지경부 국가연구개발 사업 참여율 100% 제한 규정이다. 정부는 올 들어 규정 이행 여부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 규정은 출연연을 비롯한 전문생산기술연구소 등 연구기관이 국가 연구개발 과제를 진행할 때 인건비 지출은 참여 연구원 총연봉(100%)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초 이 제도 취지는 연구원의 과도한 연구개발 과제 수주 경쟁을 막고 부실한 연구개발 성과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정된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하루 8시간 업무 기준에 맞춰 연구원 총연봉 100% 이상 지출을 금하는 막을 단단히 쳐놓았다. 연구원들은 현행 제한 규정이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창의성을 갖춘 우수 연구인력이 능력을 더 발휘해 추가로 개발과제를 수행할 수 없어서다. 연구원이 8시간 이상 일한 초과 근무는 아예 인정받지도 못해 업무 의욕을 떨어뜨린다.

 연구기관 입장에선 우수 인력을 더 뽑기 위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연구원 내지는 행정 지원 인력 인건비도 챙겨야 한다. 이에 기관들은 참여 연구원 총연봉을 초과 신청하거나 미참여 연구원을 인건비 신청명단에 올리는 등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인건비 산정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고위 관계자조차 “감사원이 참여율 제한을 근거로 연구기관 인건비 과다 신청 등 비리를 적발하려고 작심하면 언제든지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어찌 보면 사업 참여율 제한은 10세기 후반 중국에서 도입해 20세기 초까지 존속한 ‘전족(纏足)’과 유사하다. 헝겊으로 발을 옥죄어 작게 만드는 그 풍습 말이다.

 연구개발 사업 참여율 제한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 무형의 정신노동을 단순하게 시간당 인건비로 계산하고 참여율 제한 이행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정부 연구지원 방식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현실과 맞지 않다.

 MB 정부는 대중소 동반성장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연구기관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도 짚어봐야 한다. 중기는 창의력을 갖춘 우수 연구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중기가 급변하는 산업 융복합화 시대에 대응하는 우수 인력을 쉽게 구하는 길은 바로 연구기관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일률적인 사업 참여율 제한이 걸림돌로 작용해 중기와 연구기관의 동반성장 조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참여율 제한 빗장을 풀려면 연구기관이 투명해져야 함은 당연하다.

 안수민 산업전자팀 부장 s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