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고(故)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3일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향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씨는 지난 7월 초 자택에서 심장 이상으로 쓰러진 뒤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한일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고인은 1970년 아들인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지난 86년에는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을 모아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을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의 대모 역할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어머니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드님과 만나시고 차별도 억압도 없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소서"라고 밝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도 트위터 "노동자의 어머님, 민중의 어머님 이소선 어머님, 아드님 전태일 열사 만나러 가는 길이 급하셨나요"라면서 "다시 일어나셔서 이 땅 노동자들에게 단 한마디 말씀이라고 하시고 가시지 그대로 가셨나요, 모든 짐 내려놓고 편히 가소서"라고 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좀 더 오래 사셔서 노동자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꼭 보셔야 하는데 죄송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면서 "이제 모든 것 다 산자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소서"라고 트위터에 전했다.
1948년 봉제노동자인 전상수씨와 이소선씨 사이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어린 시절 껌팔이 신문팔이를 하다 17살 때 평화시장의 노동자가 됐다. 그는 평화시장 시절 열두 살짜리부터 열대여섯 살짜리 노동자들이 다락방 작업장에서 하루 열다섯 시간씩 일하는 광경을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69년 6월 `바보회`를 만들었다.
그는 이 조직을 통해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를 조사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관계당국으로부터 묵살당하고 해고까지 됐다. 그후 그는 `삼동친목회`를 결성해 노동운동을 벌였으나 근무환경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온몸에 불을 붙여 분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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