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최저 입찰제 아이러니](https://img.etnews.com/photonews/1109/175850_20110904131845_636_0001.jpg)
“공영방송 KBS에 제품을 공급할 때는 다른 방송사보다 싸게 넣는다고 보면 맞다.”
국내외에 방송장비를 판매하는 한 업체 사장의 토로다. 국내에서 방송장비를 가장 많이 조달하는 KBS가 가장 싼 값에 장비를 사간다는 설명이다.
KBS기술인연합회 관계자의 또다른 고백. “실제 장비 업체를 사용하고 평가하는 수요 부서에서 우수한 업체를 골라 시장 가격에 맞게 구매하고 싶어도 장비 회사가 입찰 과정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단가를 낮춰서 입찰에 참가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러니다. 물건을 파는 쪽도 사서 쓰는 쪽도 마음 편하지 않다. 법 규정이 유연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KBS는 공기업이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과 그 하위법규에 따라 물품 조달을 한다. 최저가 낙찰, 적격 심사, 85%직상, 2단계 경쟁 입찰을 하게 된다. 나라장터와 KBS전자조달 홈페이지에 올라온 입찰 공고를 보면 대부분 일반 입찰로 진행된다.
그중 예정 가격이 3억원 미만인 용역에서만 예정 가격의 85% 이상에서 낙찰자가 정해진다. 그 이상 고가의 장비나 설비는 최저 가격으로 투찰한 업체가 계약을 따낸다.
방송 사고는 단 몇 초만에 일어나기 때문에 방송 기술자들은 질이 좋고 신뢰성 높은 장비를 사고 싶어한다. 하지만 입찰할 때 공고한 기본 스펙만 넘으면 장비의 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낮은 가격을 제시한 회사의 제품이 선택된다.
최저 입찰제 때문에 수익이 별로 남지 않으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할 재투자 비용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방송사도 장비 업그레이드가 안돼서 불편하다.
정부는 방송장비를 7대 육성 과제에 포함시켜 스타 기업을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장밋빛 미래만 쳐다보느라 ‘우리나라 대표 공영방송 KBS와 거래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수익을 얼마 못 남겨도 제품을 공급하려고 하는 것 뿐’이라는 업계의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쪽도 물건은 파는 쪽도 불만이라는 최저입찰제는 그래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제도 도입의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면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아예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최고가치(Best Value)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