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 중인 대학생 레이첼 밀러(22)는 내년 1월 미국 전역을 돌아보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한 달이나 넘는 기간 동안 숙박료만 몇 천 달러가 든다는 사실에 여행을 포기할까 했지만 우연히 ‘카우치서핑’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카우치서핑 이용자들은 자신의 집 중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내놓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집이라는 두려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미리 체험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해소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화를 서로 빌려주고 쓰고 있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스타트업들의 최신 창업 트렌드가 ‘협력 소비(Collaborative-consumption)’라고 전했다. 협력 소비를 지향하는 많은 기업들이 서비스에 나서고 있는 것. 협력 소비는 소비의 첫 단계인 단순한 ‘구매’를 지나 그 이후의 단계를 지칭한다. 즉, 구매 후 이를 대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단순한 소유보다는 공유가 더 이익이라는 논리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2008년에 설립된 ‘에어비앤비(Airbnb)’다. 이 회사는 여행객들에게 빈집을 빌려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10%를 받는다. 에어비앤비는 7월에만 1억1200만 달러 매출을 올렸으며 기업가치는 13억 달러에 육박한다.
릴레이라이즈(RelayRides) 역시 비슷한 공동 소비 모델이다. 릴레이라이즈는 집 대신 차를 빌려준다. 하지만 회사 소유 차량은 한 대도 없다. 회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변에 있는 ‘노는’ 차를 검색한 뒤 이를 사용할 수 있다. 릴레이라이즈는 현재 3000명이 넘는 유료회원들이 차를 빌려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인 제너럴모터스(GM)는 릴레이라이즈를 통해 자사 ‘온스타’ 회원들이 내비게이션과 통신 시스템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GM은 향후 릴레이라이즈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플럼기어(Plumgear), 태스크래빗(TaskRabbit) 등 신생 협력소비 비즈니스 모델 사이트들이 속속 오픈 중이다. 플럼기어는 유아동복을 주고 받는 사이트며 태스크래빗은 사이트 내에서 이웃 간에 장을 보거나 눈 치우는 일 등을 거래한다. 보스턴에 거주 중인 리 버스키 주부는 “태스크래빗을 통해 한 시간 당 45달러가량을 버는데 이 중에서 15%를 수수료로 내놓는다”며 “2000개가 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어 나의 능력을 사고파는데 유용하다”고 밝혔다.
이런 협력 소비가 최근 대두된 것은 IT 기술 발전 덕분이다. 위성항법장치(GPS) 등이 무선인터넷서비스와 만나 위치기반서비스(LBS) 등의 기술을 만들어내고 무선인식태그(RFID)도 더욱 정교해졌다. 이런 기술들이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와 결합해 협력소비 서비스 태동에 일조한 것이다.
샘 앤거스 팬윅앤웨스트 로펌 변호사는 “협력소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가격을 직접 책정할 필요없이 수수료만 받아도 되기 때문에 보다 편리한 경영이 가능하다”며 “이들은 개인들의 자산을 사용해 돈을 벌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