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보낸다. 세계가 그를 애도하고 있다. 그의 이름 ‘잡스’는 우리말로 ‘직업’이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자동화 사회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는 성장하지만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의 함정에 빠진 지 오래다. 자동화의 핵심엔 컴퓨터가 있다. 실업률이 1930년대 대공항 수준을 넘어선 지금, 그래서 직업을 창출하지 않는 컴퓨터 이용은 무의미하다. 거인의 이름 잡스가 ‘직업’을 의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잡스의 연설이 기억난다. “돈이 없어 친구 집 마루에서 기숙하고, 버려진 깡통을 팔아서 연명했다.” 그는 또 말했다. “항상 배고프고, 항상 바보가 되라.” 배고픔을 경험한 사람만이 직업의 의미를, 고객의 의미를 안다. 배고픈 처절함으로, 바보의 순박함과 ‘매임 없음’으로 그는 우리 시대를 바꿔 놓았다.
1980년대 처음 PC가 나왔을 때, ‘컴퓨터 성능은 규모의 자승에 비례한다’는 그로슈의 법칙에 매여 있던 당시 컴퓨터업계 황제 IBM은 그를 비웃었다. 그때 잡스가 들고 나온 로고는 한 입 깨문 사과, 애플이다. IBM이 지배하는 세상을 애플로 상징하고, 그 애플을 한입씩 깨물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8비트 PC를 보고 모두 비웃었으나, 그는 16비트 PC로 IBM까지 무릎을 꿇게 만든 쾌거를 이뤘다. 정보화 패러다임을, 중앙 집중적에서 분산적 관리로 바꿔 놓았다. 그는 젊은이의 우상이 됐다. 새로운 잡스(직업)를 창출했다. IBM이 기존 직업을 대치하는 기계였다면, 잡스의 컴퓨터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기계였다.
잡스의 혁신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시작됐다. 이용자를 편하게 하는 운용체계와 화면 설계, 음악 및 영상에 대한 욕구를 철저하게 파악한 혁신적인 기능, 휴대가 편리하도록 가볍고 얇고 빠르고, 예쁜 하드웨어 설계 등은 배가 부른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다.
그는 융합시대의 도래를 알고, 전화와 인터넷, 음악·동영상 감상 기능을 융합한 아이폰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흥미롭게도 아이폰 등장은 과거 자신이 부정했던 중앙 집중적 통합관리 모형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클라우드 개념의 새로운 모형이 등장한 것이다. 클라우드는 아마도 21세기 전반을 풍미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잡스는 “자신이 세상에 넘치는 좋은 아이디어·제품을 수집해 더 새롭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잡스 혁신 뒤에 수많은 지식재산권이 내재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식재산권 뒤엔 수많은 공유저작물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 것이다.
지식재산의 공유개념에 기초한 애플이 잡스 말년에 특허전쟁을 시작하고 나선 것은 유감이다. 특허전쟁은 잡스가, 아니 나아가 애플이 애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애플이 지금까지의 진취적 혁신보다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구적·수세적 정책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것이다. 애플은 만리장성을 쌓는 ‘고대 중국’이 아니고 도로를 건설한 ‘로마 제국’이고 ’몽고군단‘이어야 생존한다.
잡스의 위대함은 슘페터의 혁신설을 증명해 준 사람이라는 데에서 발견된다. 슘페터는 기업이 거대해지고 시장이 커지면, 혁신 동력이 상실되고, 그래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발전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 걱정했다. 특허전쟁은 슘페터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같아 안타깝다.
애플은 특허전쟁보다 새로운 제품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 진취적이고 공세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잡스가 사라진 공간을 특허전쟁이 차지한다면, 그것은 애플의 비극이고 인류의 비극이다. 배고픔의 처절함과 바보의 자유스러움으로,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 잡스가 사라진 공간에, 제2 제3의 잡스가 나와서 고용을 창출하고 그래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원한다.
안문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ahnms@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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