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 · · ·

 이단아라고도 불렸다. 오롯이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고도 했다. 타협을 몰랐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천재였다. 에디슨 이후 최고의 발명가라는 칭호도 따랐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와 같은 종합예술가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우직하고 바보스럽게 희망을 갈구한 자연인이었다.

 스티브 잡스, 그의 이미지는 극단이다. 오만한 천재였지만, 우수에 가득 찬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영원의 장막을 들추고 아득한 곳으로 먼저 갔다.

 삶은 어디서 오는가. 시리아 출신 유학생과 미국 여대생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인 양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고 방황해야 했고,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였다.

 한때는 히피문화에 빠져 마약을 하기도 했고, 동양적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애플의 성공으로 세계 최고 CEO, 거부(巨富)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삶의 양 극단을 오갔던 그였다. 우직하면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갈구하는 인물이었다. 끊임없이 혁신을 추동하고 창의성을 요구했던 CEO기도 했다. 가장 인간적인 고뇌와 연민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였기에 자신부터 혁신하고 또 혁신했다.

 그토록 인문학을 강조했던 이유였다고나 할까. 그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유난히 인문학을 강조했다.

 공학과 인문학을 결부시키고 결합하는 작업은 지난한 길이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통섭(統攝)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플의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했다”고 단언했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폴라로이드가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길 바란다’는 에드윈 H 랜드 박사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구성론(SCOT)을 따라가 보면 그의 철학이 더 쉽게 다가온다. 블루어, 반스, 세이핀 등은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배격하고 과학과 기술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문화로서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자원은 무엇이든 활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잡스가 얘기하는 인문학적 관점과 다를 게 없다. 문학과 철학, 문화, 감성, 평등과 분배 등 사회 인문학적인 요소들이 창의성과 결합해야 비로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주의적 관점이다. 인간을 위한 혁신, 그래서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경험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수록 더욱 훌륭한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의 “진정으로 독창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으며, ‘빌려오기(borrowing)’를 기업 혁신과 창의성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 단언컨대 쉽지 않을 것이다. 삼성이 바로잉(borrowing)을 도구삼아 패스트 팔로(fast fallow)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분명 장점이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문제는 교육이다. 무너진 공교육 시스템 하에서의 주입식 공부, 대입 위주의 교육제도는 잡스의 출현을 방해할 뿐이다. 영혼도 없고, 상상력도 허용하지 않는 교조주의적 경쟁 만능의 퇴물철학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이 나라 기득권적 이데올로기 세력이 활개치는 한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마침내 갔다. 더 이상 고독하고 우수에 젖은 결함 많은 인간 잡스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혁신과 창의력, 상상력, 그리고 희망을 끊임없이 갈구했던 그의 위대한 정신은 온전히 남았다. 우리는 과연 한국인 스티브 잡스들을 키워낼 수 있는가.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