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중학생 A군(14세)은 어느 날 게임에 새로운 콘텐츠 업데이트가 이뤄진 것을 알게 됐다. 새롭게 나온 게임 아이템은 ‘상자’ 형태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으며, 1개에 1만원 수준으로 특정 확률로 우수한 성능 아이템이나 게임 내 무기가 지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절한 가격에 좋은 게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 게임캐시로 구입을 했다.
그러나 원하는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고, A군은 반복해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두어 번만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은 주변 친구들이 좋은 아이템을 가진 것을 보면서 그칠 수 없게 됐다. 게임 내 전체 창을 통해 고급 아이템을 받은 이용자를 축하하는 메시지가 뜨면서 이 같은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또 다른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B씨(20세)는 보유한 아이템 성능을 더 좋은 것으로 강화시키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이템의 성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실패하면 파손될 가능성이 존재,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강화하는 과정에서 아이템의 손실을 방지해주는 아이템이 이벤트로 판매됐다.
아이템 구매로 4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게임 진행상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캐시로 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강화에 성공하면 최고 수십 배 더 큰 가치를 가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가 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되팔기도 가능해 ‘사재기’를 시도했다.
◇‘캡슐’ ‘상자’ 확률형 아이템, 민원 폭주=온라인 게임 내 확률형 게임 아이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참여마당에는 일주일에도 수십 개의 확률형 게임 아이템에 대한 민원 및 항의가 올라오고 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른바 ‘캡슐’이나 ‘상자’ 형태로 게임 이용자가 구매 이후에 아이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유료 판매 아이템이다. 또 두 가지 이상의 아이템 기능을 합치는 ‘조합’ ‘강화’ ‘인챈트’ ‘제련’ 등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에서 판매되는 캡슐형 완구나 ‘뽑기’ 시스템과 비슷하다.
민원을 제기한 이용자들은 “기대 심리를 이용한 반복 구매 유도로 청소년 대상 게임에서 과도한 지출이 일어난다”면서 “무작위로 결과를 배출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은 사실상 사행행위의 모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에서는 해당 아이템의 결과가 ‘꽝’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청소년 대상 게임에서는 이용 금액 대비 현저히 가치가 낮은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다. 등급분류 기준에서는 전체이용가 게임에서는 반드시 구매할 필요가 없이 게임 진행만으로도 얻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게임들은 일반적인 게임 진행으로는 얻을 수 없고 오직 확률형 아이템 구매로만 얻을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을 제공해 반복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또 짧은 기간 동안만 이벤트 형식으로 아이템을 판매, 업데이트 이후에 내용수정 신고를 하기 때문에 현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이벤트가 끝나는 경우도 발생, 정확한 모니터링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용자 불만 누적, 국정감사 단골 ‘뭇매’로=게임물등급위원회는 청소년 대상 게임 등 민원 사례가 늘어나면서 지난 7월 대표적 10개 게임사를 대상으로 자료 요청 및 간담회를 개최했으나 전원이 거부하거나 불참했다. 추가 조사 결과 10개 게임사가 공통적으로 확률형 게임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5~20개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게임사들은 아이템 종류와 성능은 밝혔지만 유료화 모델은 내용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또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월 사용 한도·아이템 확률·1인당 최다 이용건수 등 구체적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대부분 온라인 게임 수익구조가 월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확률형 게임 아이템은 게임업계의 대표적 ‘효자’ 매출상품이다. 처음 롤플레잉 게임에서 아이템 강화에서 주로 쓰였던 확률형 시스템은 온라인 스포츠게임 및 웹게임 확산으로 온라인 게임의 주요 수익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대다수는 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기능성이나 치장성 캐시 아이템이지만, 반복 구매 유도가 가능한 확률형 아이템 도입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키트’ ‘상자’ 등 확률형 아이템의 과도한 판매로 게임위를 통해 주의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자 등급 판정이 나기 전에 이벤트 형식으로 판매를 완료하는 등 악용 사례까지 확인됐다.
이용자 민원이 늘어나면서 사행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08년 자율준수 규약에 이어 몇 년째 국정감사에도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배틀필드 온라인’ ‘미르의 전설2’ 등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확률형 게임 아이템을 문제삼았다. ‘배틀필드 온라인’의 ‘분대장 포상’ 아이템은 500원을 투입해 최저 2000포인트에서 최고 100만포인트까지 획득 가능한 것은 이용자의 기대심리를 과도하게 조장, 사행성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사행화를 조장하는 아이템 판매나 상설 모니터링 시스템 부재 등 게임업계는 자율규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직접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행정처분 및 징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08년 지정한 자율규약에 따라 ‘판매가에 비해 가치가 낮거나 게임 내에서 획득되지 않거나, 캐시인 경우 확률형 유료 아이템으로 판매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 상설 모니터링 기구를 통해 정기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진행되지 않았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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