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20세기 여성을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세탁 자체는 21세기가 도래한 지금도 여전히 번거로운 일로 남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옷가지를 모으고 또 넣는 일을 기계든 사람이든 누군가 대신했음 하는 바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세탁의 작은(?) 번거로움 마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유해물질을 스스로 제거하는 ‘똑똑한’ 원단이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이하 UC데이비스) 연구원들은 최근 특별한 원단을 공개했다. 빛을 쬐면 박테리아나 살충제 등 유해 화학물질을 스스로 없애는 섬유다.
원리는 복잡한 화학 공식으로 이뤄지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2-안트라퀴논 카르복시산(이하 2-AQC)’라고 불리는 화합물을 면직물에 투입한다. 2-AQC는 섬유소에 단단히 결합해 세탁 후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그런 뒤 이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된다. 단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빛을 받은 2-AQC에서 히드록실라디칼과 과산화수소 같은 활성산소가 배출돼 옷에 묻은 박테리아와 같은 유해물질이 자동 제거되기 때문이다.
효과는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원들의 이번 개발 성과는 영국 왕실화학회 재료화학지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에 게재됐다.
상업화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군사나 농업 등 특수한 작업 현장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고, 과일과 같은 음식 유통 과정에도 접목할 수도 있다. 더 상상력을 펼친다면 지금은 유해물질 제거지만 추후에는 얼룩 등 생활오염도 제거하는, 정말 세탁이 필요 없는 옷도 기대해 볼 수 있다.
UC데이비스에서 박사과정 중 이번 원단 개발에 참여한 류닝씨는 “군인뿐 아니라 농업, 헬스케어 분야 등으로 다양한 접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자가 세탁의 핵심인 2-AQC가 다른 화학물보다 고가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더 저렴한 물질로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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