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정부 잉그리드 리에튼 부총리는 혁신장관(Minister for Innovation)이라는 또 다른 직책을 갖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최장 무정부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벨기에는 지방 자치 정부와 행정 부처만 존재한다. 생산 기지는 이미 아시아에 뺏기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로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이는 유럽 전체가 비슷하지만 벨기에는 중앙 정부조차 세우지 못한 상태다. 위기 대응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현재가 이러할진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혁신부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간다. 혁신부는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빈곤을 퇴치할 방법을 찾는다. 중앙정부는 없지만 플랑드르 지방에서라도 미래 자산이 될 지식산업에 투자한다. 플랑드르 지방의 이같은 의지는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했다. 세계 수 많은 기업과 협력을 통해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IMEC과 기초기술에 강한 대학들이 그 중심이다. 11일(현지시각) IMEC의 새로운 건물 기공식에 참석한 리에튼 부총리는 “생산의 중심은 아시아로 이전됐지만 여전히 혁신 리더십은 유지해야 한다”며 “혁신은 미래를 위한 최고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갖고 있었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다. 이렇다 할 반도체 기업 하나 없는 벨기에에 어떻게 IMEC과 같은 유럽 최대의 반도체 기술 연구소가 존재하는 것일까. IMEC이 어떻게 산학연 협력의 대명사가 됐는가. 기업이 없는데도 산학연 협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 연구소를 만들어냈다. 리에튼 부총리의 혁신에 대한 의지가 그 답이다.
IMEC의 출발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IMEC은 사실 벨기에와 프랑스·네덜란드 3국이 합작해 1984년 설립한 연구소다. K·루벤대학교의 작은 연구센터에서 시작했으나 1990년대 초반, 이들은 과감한 투자를 진행한다. 그 당시로는 무모한 대규모 200㎜ 팹을 설립한 것이다. 이때부터 IMEC은 기술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리에튼 부총리 말처럼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 이것이 유럽의 저력이 아닐까.
루벤(벨기에)=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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